나, 코우사카 쿄우스케는 지금 소부선
-신주쿠, 아키하바라 등을 경유하는 전철-을 타고 있다.
‘너 또 여동생 심부름 하냐?’ 라고 생각하고 있지, 당신?
유감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셨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 앞엔 그 여동생, 키리노도 있기 때문.
그렇다, 지금의 난 이 녀석 쇼핑의 짐꾼 역할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아, 눈에서 땀이…….
오늘 난 키리노님의 명을 받들어, 시부야에서 판매한다는 한정판 액세서리,
아키하바라에서 역시 한정 판매한다는 피규어 구매에
끌려나온……, 아, 아니 동행한 거다.
사실 치바역에서 전철을 타기 직전,
‘아니, 그 정도 쇼핑에 짐꾼은 필요 없잖아!’ 라는 거대한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미 내 옷소매는 공주님 손에 꼭 잡혀있었다.
결국 그렇게 전차에 오르고는 이렇게 끌려……, 아, 아니 동행하고 있다.
‘참……, 혼자 다니면 어디가 덧나나?’
익숙하게 변하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몰래 한숨을 짓는다.
그런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
“…….”
“……, 칫!”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공주마마 상태가 상당히 저기압이기 때문이다.
“아, 뭐야! 짜증나 죽겠어!”
“야, 야! 조용히 해!”
야심차게 나온 건 좋았지만…….
결국 두 가지 한정판, 어느 것도 키리노의 손에 들어오지 못했다.
둘 다 아슬아슬하게 우리 앞에서 완판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것만으로도 키리노의 짜증 지수는 한계점까지 왔었는데…….
“꺅!”
“아, 조심해!”
그런 상황에 약이 바짝 오른 키리노가 다른 곳을 돌아보자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바람에 예정했던 것보다 늦어지면서,
귀가 시간이 퇴근 시간에 딱 걸려버린 것이다.
“아, 정말~!!! 짜증나, 짜증나!!!”
“조용히 하라니까! 사람도 많은데!”
그렇다, 지금 전차 안 상태는 만원.
거기다 역을 지날 때마다 들고 나는 사람들 덕에
자리에 앉지 못한 우리 둘은 이리저리 치댐을 당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특히나 키리노 녀석, 드디어 불만이 폭발한 듯 날 노려보더니…….
“씨~!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뭐? 내가 뭘?”
“너 때문에 액세서리도 피규어도 못 샀잖아!
거기다 전차도 이렇게 붐비고!”
“그게 왜 내 탓이야?!”
아닌 말로…….
한정판들을 아슬아슬하게 못 산 건,
순전히 이 녀석이 외출 준비랍시고 꾸물대는 바람에 그런 거다.
‘내가 현관에서 신까지 신고 기다린 시간이 얼만데…….’
도대체 여자란 생물들은 그깟 잠깐 외출에 무슨 준비가 그렇게 필요한 건지.
거기다 방금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러시아워에 걸린 것도
이 녀석이 고집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런 거다.
내 잘못은 요만큼도 없다는 거다!
‘하아…….’
뭐, 이 녀석이 얼토당토 않는 걸로
나한테 짜증을 부리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나 역시 여러 상황에 짜증이 만발했지만 꾹 참고 만다.
이 나라 러시아워의 대중교통 상황은 남자인 나도 견디기 쉽지 않다.
하물며 가냘픈 여자애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고 짜증이 날까?
키리노의 불만도 일견, 이해가 간다.
참……, 어쩔 수 없지!
“앗! 무, 뭐하는 거야?!”
“조용히! 가만있어 봐!”
난 키리노를 품에 안은 형태로, 승객들의 흐름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해서 움직였다.
그렇게 키리노를 전차 모서리 공간에 넣고 내가 승객들의 막는 형태로 섰다.
‘이러면 이 녀석이 조금은 편하…….’
순간!
갑작스런 뒷사람들의 압박에 내 몸이 무너진다.
“지, 진짜! 뭐하는 거야, 너!!!”
“어, 어쩔 수 없었어, 사람들이…….”
이 녀석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려고 했던 내 행동이,
오히려 키리노를 구석에다 몰아붙여놓고는
내 온몸으로 밀어붙이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복잡하다는 핑계로 치한 짓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이 시스콘!!!”
다른 승객들을 신경 쓰느라 나한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지만,
그 분노와 짜증은 고스란히 그 목소리에 담겨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말도 안 되는 험한 소릴 들어야 하는 나 역시
인내심에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목소리를 죽이는 대신 짜증을 한 것 담아 쏘아붙였다.
“내가 미쳤냐?!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뭐?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너 편하게 해주려다 이렇게 된 거야! 이럴 때라도 오빠 좀 믿어 봐라!”
“뭐라는 거야! 너처럼 별 볼 일 없는 인간과
모든 게 완벽한 내가 남매라는 시점에서 이미 아웃이거든!!!”
이게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뭔가 반격하려고 했지만, 다시 승객들이 들어오는지
등에 느껴지는 압박감이 커진다.
“하윽?! 뭐, 뭐하는 거야!!!”
순간 내 왼손바닥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게 만져졌다.
그와 동시에 키리노가 눈을 치켜뜨며 날 노려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언가에 밀린 내 왼손이 공교롭게도 키리노의 윗옷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럼 지금 내 왼손바닥이 만지고 있는 건 키리노의 맨 허리…….
“아, 그…….”
뭔가 변명을 하며 손을 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밀착된 몸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읏…….’
그런 서슬에,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키리노의 체온과
향수 냄새가 더욱 느껴지면서…….
오히려 몸이 굳어져 버렸다.
‘아! 지, 지금 정신줄 놓을 때가…….’
내 몸 왼쪽은 도저히 움직일 기미가 없고
하다못해 조금 여유가 있는 오른팔이라도 움직여…….
“윽! 무, 뭐하는 거야, 이 변태!!!”
키리노의 왼쪽 어깨와 등을 감싼 팔을 움직이려하자,
갑자기 키리노가 몸을 떨며 얼굴을 붉힌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윽!”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움직이려 할 때마다
키리노의 몸이 움찔댄다.
아니 그 보다 뭔가가 손가락에 걸려 움직임을 막고 있는데…….
“햐악!”
그 것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손가락 끝을 움직이자,
키리노의 입에서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목소리가 나왔다.
이게 뭐 길래…….
‘서, 설마?!’
그 것의 정체를 알아낸 순간, ‘툭!’하는 느낌이 전해지면서
그 것에 걸려있던 내 오른손 손가락이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서, 설마 나 지금……. 이 녀석의 브래지어 후크를?!’
그래, 이 건 사고다!
내가 좋은 마음에, 이 녀석을 조금이라고 편하게 해주려다 일어난
불행한 사고일 뿐이다.
“…….”
하지만…….
이 녀석에겐 그런 내 사정이야 안중에도 없을 거다.
분노 때문인지, 붉어진 얼굴로 작게 몸을 떠는 키리노.
‘나 이제 죽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난리를 칠지 모른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사형 확정이다.
집에 가자마자 난,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을 반드시 맛보게 될 것이다.
“흐윽!”
그런데 키리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점점 붉어지는 얼굴, 살짝 눈물 어린 눈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이건 마치…….
‘서, 설마…….’
정황만 봤을 땐…….
지금 키리노는 치한에게 성추행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
설마 그런 상황에 함몰되어 괴로워하는 건…….
“하아…….”
내 가슴에 이마를 대며 한숨을 짓는 키리노의 체온이…….
왠지 점점 올라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방금 브래지어 후크가 풀어졌을 때 바짝 굳어졌던
키리노의 몸이 점점 풀려오는 게 느껴진다.
‘아니! 네가 왜?!’
네 말대로라면 중증 시스콘인 내가 뜨거워져야 할 상황이잖아!
그런데 네가 왜…….
‘아! 서, 설마 이게…….’
당하는 여성은 지금 상황이 그저 무섭고 수치스러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뿐인데…….
추행당하는 여성이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행위를 좋아하는 줄 아는 치한범의 심리?
그런 착각까지 한 상황에서 지금의 난…….
‘치한, 그 자체잖아!’
이젠 모르겠다.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그냥 이렇게 키리노를 안고, 치바역까지 가자!
‘치바역에 가까이 가면 승객들도 많이 빠져나갈 테니, 그때까지…….’
전차의 흔들림과 승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온몸으로 느껴지는 온기와 감촉.
그 것에 당장이라도 분노(?)할 것 같은 녀석을 필사적으로 달래며,
키리노의 작은 몸을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이 봐요, 당신! 뭐하는 거예요!”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준엄한 목소리와 내 어깨를 잡는 느낌에,
반쯤 어딘가로 날아가 있던 내 정신이 겨우 돌아왔다.
내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지금 뭐하는 거냐고요, 지금 그 여자 분한테!”
힘이 들어간 눈으로 날 노려보는 여자가 둘.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가뜩이나 느린 내 머리 회전으로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우리를 좀 따라오셔야겠네요.”
내 어깨를 잡은 여자의 일행이 조용히 그렇게 말한다.
‘아니, 이 혼잡한 전철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돌아보자…….
“어? 어, 언제…….”
어느새 전철 안 승객이 꽤 많이 빠져있는 상황.
거기다…….
- “다음 정차역은 치바, 치바역입니다!”
어느 새, 전철은 우리의 목적지에 곧 도착할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주변 승객들까지…….
‘지, 지금 이 상황…….’
그다지 붐비지도 않는 전철 안.
소녀를 구석에 몰아놓고는 한 손은 그녀의 상의 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소녀의 등을 감싸 안아
자기 몸에 꼭 밀착시키고 있는 어벙한 표정의 남자.
‘딱! 성추행 현행범의 검거 현장이네요.’
아, 아니!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야, 야! 정신 차려, 너 괜찮아?!”
황급히 키리노에게서 떨어지며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후에~?”
트, 틀렸다, 이 녀석…….
아직 넋이 나가있어!
“야, 정신 차리라니까! 안 그러면…….”
“그만하세요! 계속 난폭하게 굴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내가 키리노의 어깨를 잡고 흔들려 하자,
두 여성은 나와 키리노 사이를 가로막으며 내 행동을 제지한다.
‘이, 이거……. 진짜 야단났다!’
“그래서! 당신, 저 여자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저 붐비는 만원 전차 안에서…….
여동생을 지키려했던 선량한 오빠일 뿐이었다, 난.
그런 나였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엉? 말을 해 보라니까요!”
“그, 그게…….”
할 말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앞에서 눈을 부라리는,
아버지랑 느낌이 비슷한 경찰 아저씨.
그 앞에서 난 점점 더 주눅들어갈 뿐이었다.
“괜찮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얘기해 봐요.”
그리고 조금 떨어진 내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키리노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여자 경찰.
결국 나와 키리노는 정의감 넘치는 두 여성의 손에 이끌려
치바역 철도경찰대에까지 오게 되었다.
키리노가 그 순간에 오해를 풀어줬다면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겠지만,
녀석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정신이 나가 있다.
젖은 눈과 열에 들뜬 멍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 그저 묵묵부답.
경찰대에 올 때도 내 옷 소매를 잡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을 뿐이었다.
그런 키리노의 모습을 그 여자 분들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긴 했지만…….
결국 내가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야, 인마! 제발 정신 좀 차려! 빨리!’
적극적으로 증언을 한 증인이 둘이나 있는 상황에서,
내가 무슨 소리를 한들, 치한범의 구차한 변명밖엔 안 된다.
-정말 이렇게 표현하기 싫지만- 가해자가 된 지금 입장에선
피해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중요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녀석?!’
여전히 달아오른 얼굴, 멍하지만 뭔가 만족한 듯 한 표정.
도저히 키리노의 심리를 읽을 수가 없다.
만의 하나, 키리노 녀석이 오늘 받은 스트레스를 풀겠답시고,
이상한 소리를 해서 날 공경에 빠뜨리려 한다면?
‘서, 설마……. 아무리 이 녀석이
날 골탕 먹이는 걸 무엇보다 좋아한다고 해도…….’
현행범, 그 것도 성추행범으로 자기 오빠를 경찰에 넘긴다니…….
예전에 녀석이 나한 가한 무자비한 테러들이 귀여울 정도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제, 제발 키리노?
없는 얘기는 만들지 마?
“괜찮으니까 말해 봐요, 네?”
“그, 그러니까 이 남자가……. 절 전차 구석으로 몰더니…….
제 옷에 손을 넣어 허리를 만지고……,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버리고…….”
있는 얘기도 그대로 하지 말고!!!!!!
“야! 그……, 아니……, 으극…….”
키리노의 사실에 입각한 정직하고 충실한 증언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 난 그저 입술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어허! 자리에 앉아요!”
준엄한 목소리와 경멸에 찬 시선.
난 두 경찰의 압박에 다시 얇은 철제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크윽!’
상황이 점점 장난이 아니게 되어간다.
이 상황에서 키리노 녀석이, “이 남자,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
“어서 이 사람을 처벌해 주세요!” 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내 인생은 끝난다.
‘차라리 아야세의 손에 내 인생이 쫑 난다면 행복하기라도 할 텐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내 머릿속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들었다.
‘아! 자, 잠깐!’
순간 뭔가가 번뜩였다.
역시 인간은 한계에 다다르면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둔해터진 내 머릿속이지만, 꽤 괜찮은 생각을 만들어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남매, 오빠와 여동생 사이다.
이 사실을 어필하면, 어쩌면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다.
하다못해 부모님을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녀석이 부모님에게까지 엉뚱한 소리를 할 가능성도 있고,
그 때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도 무섭지만.
이 녀석이 아무리 날 싫어하고, 아까 상황이 오해할 소지도 충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에게까지…….
사회를 넘어 인간적으로까지 날 매장시킬 정도의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의 관계가…….
그 정도까지는 회복되어있으리라 믿는다!
“사, 사실 우리는…….”
“서로 사귀는 사이에요.”
순간 우리 남매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뭐?”
“에?”
키리노의 목소리가 끝나자…….
우리 맞은편에 앉은 경찰 두 분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
“무, 뭐라고옷!!!!!!”
난 다시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사귄다고?
누가?
누구랑?
나랑 키리노랑?!
그게 무슨 시베리아 벌판에서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어허, 앉으라니까!”
아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당혹감에 입을 뻐끔거리던 난,
다시금 들린 호통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방금 한 키리노의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힐끔 키리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내 행동에 보조나 잘 맞춰, 경거망동 했다간 정말 죽을 줄 알아!’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 키리노는 순간 눈빛으로 그런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은 난, 찍소리도 못 내고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자세를 바로 해 앉았다.
“저, 정말이에요? 혹시 이 남자에게 무슨 협박 같은 거, 받은 것 아니에요?”
저기 누님?
협박은 방금 제가 받았는뎁쇼?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저희 정말, 연인 사이에요.”
“아, 아니 그렇지만…….”
“증거도 있어요. 그치, 쿄우스케?”
“즈, 증거?”
갑자기 날 향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귀엽게 웃으며 날 보는 키리노.
그런데 증거라니…….
“그, 그게 무슨…….”
“참, 쿄우스케도……. 겨우 세 번째 데이튼데 갑자기 그렇게 나오니까…….
나도 많이 놀랐단 말이야!”
“아, 아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고, 그거 보여드리면 이 분들도 오해를 푸실 거야.”
“그, 그게…….”
아무리 최선을 다해 보조를 맞추려고 해도,
최소한의 의중이라도 파악을 해야 맞추든지 말든지 할 텐데…….
세 번째 데이트라니 예전 그 가짜 데이트 말고 또 뭐가 있었나?
“뭐야, 둘이 있을 땐 그렇게 적극적이더니…….
우리 관계를 다른 분들에게 보이는 건 쑥스럽다는 거야?”
여전히 혼란에 빠진 날 무시하고 계속 연기에 몰두하는 키리노.
장난기 어린 웃음과 달콤한 목소리로…….
“훗, 귀엽긴~!”
하며 가볍게 내 어깨를 애교 있게 친다.
으아~, 닭살!!!
으아~, 재수 없어!!!
“훗, 할 수 없지. 내 거 먼저 보여 드릴 게!”
가지고 있던 핸드백을 열어 뒤지는 키리노.
이내 그 손에 들려 나온 건, 다름 아닌 휴대전화.
그 걸 뒤집어 책상 앞에 놓는다.
거기엔…….
‘아……, 그 그런 거였…….’
그런 키리노의 행동에 나도 부끄러움을 참고,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차마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키리노의 휴대전화 옆에
내 휴대전화도 뒤집어 놓았다.
‘으……, 이게 무슨 수치 플레이여~!’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차라리 형사 처벌을 받는 게 나을지도?’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피함에 난 당장이라도 여기 바닥 콘크리트를 뚫고 숨고 싶어졌다.
“이건…….”
“확실히…….”
우리를 조사하던 두 경찰 분들도 ‘나와 키리노의 러브러브 투샷 스티커 사진’에
키리노의 발언에 대해 납득을 한 모양이다.
두 분의 얼굴엔 잠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번진다.
“더 있어요!”
신난 목소리로 다시 손을 뻗어 자기 휴대전화를 가져오더니
화면을 터치해 켜서는 다시 두 분에게 내민다.
너, 그 것까지?!
“자! 쿄우스케 것도 보여 드려!”
그만해, 내 라이프는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라고!
이렇게 절규하고 싶었지만…….
순간 다시 보여준 그 무서운 눈빛에 순순히 손을 뻗어
피쳐폰 형태인 내 휴대전화를 가져와 열었다.
‘아으~! 정말 미치겠네!!!’
여동생, 아니 애인과 찍은 커플 스티커 사진을,
그 것도 휴대전화에 나란히 붙여놓은 시점에서 이미 아웃인데…….
‘…….’
여동, 아니 그러니까 여자 친구의 수영복 입은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쓰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야 한다니…….
'세X에 이런 X이!' 같은 TV프로그램에 최강 닭살 커플로 나온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만의 하나, 그렇게 된다면 모자이크랑 목소리 변조를 부탁해야…….'
내 휴대전화 화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키리노의 수영복 모습이
물빛으로 뿌옇게 번져간다.
그리고 떨리는 손길로 그 화면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 한 동안 이쪽으론 못 올 것 같아.’
“다행이다~! 그 스티커 사진이랑, 대기화면 덕에 산 거야!”
결국 난…….
치한 현행범으로 잡혀가는 대신, ‘공공장소에선 좀 자중하라!’ 는
꾸중을 들은 팔불출 남자친구로 무사 방면 되었다.
“그, 그러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사진들이 있었기에 그 일은 ‘파렴치한 치한의 성추행’이 아닌
‘연인들의 조금 과한 닭살 행각’ 으로 해서 끝났으니까.
비록 내 자존감은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래도 감사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데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 또 연인 행세냐고!”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해 버렸다.
“그게 뭐 어때서?”
“그냥 평범하게 남매라고, 오빠 동생 사이라고 했으면 되잖아!”
분노에 찬 내 목소리에 키리노는 생긋 웃더니…….
“아니, 그게~. 우리 정말 안 닮았잖아?
우릴 처음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남매에요~!’ 라고
했을 때를 떠올려 봐.”
“더……, 더 의심한다고?”
“바로 그거야! 더군다나 그런 상황이었잖아?
그러니 우리가 남매인 걸 증명하기 보다는
서로 닮지 않은 걸 이용해서 연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납득시키기 쉬운 거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만약 우리가 남매라고, 키리노도 나서서 주장했다고 한다면…….
전철에서의 상황까지 더해서 경찰 분들을 납득시키려면
부모님까지 모셔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일은 다른 차원에서 시끄러워졌을 거다.
“흐흐흥~!”
그건 그렇다 치고.
왠지 모르지만…….
이 녀석, 되게 신났다.
사고 싶은 걸 못 샀을 때, 그게 특히 ‘한정판’일 경우 이 녀석,
보통 짜증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짜증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거기다 그런 일도 있었는데…….
“너, 괜찮아?”
“응? 뭐가?”
깡충깡충, 내 두 세 걸음 앞을 걷던 키리노가
몸을 돌리더니 내 물음에 고개를 갸웃 한다.
“아, 아니. 너, 사고 싶은 것도 하나도 못 샀고
잘 풀리긴 했지만, 전철에서 그런 일도 있었는데…….
기분이 좋아보여서 말이야.”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불만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쭉 빼는 키리노.
그리곤 양 손을 허리에 얹으며
특유의 거만한 포즈로 한 걸음 내 앞으로 다가와 선다.
“기분 좋긴! 물론 짜증 지수 만땅에 화도 무진장 나있지, 당연한 거 아냐?”
“무, 뭐?”
“뭐가 뭐야! 자신이 한 짓, 벌써 잊은 거야?
전차 안이 붐빈다는 핑계로 날 막 끌어안질 않나!
거기다 옷에다 손을 넣고 내 허리를 막 주무르질 않나!”
“아, 아니 그건…….”
“그, 그리고…….”
심통 난 표정으로 불만을 얘기하던 키리노의 얼굴이 순간 붉어진다.
“끌어안고 주무르는 것도 모자라……. 내…….
내……, 소, 속옷도 벗기고…….”
“그, 그건 사고였어! 그리고 그, 그렇게 표현할 건 없잖아!”
내가 허둥지둥 변명하자, 가늘게 뜬 눈으로 허리를 살짝 숙여
내 얼굴을 올려다보는 장난기 어린 작고 동그란 얼굴.
“응~, 내 브래지어를 자기 손으로 푼 건 부정하지 않네?”
“으……, 그, 그건…….”
“이 변~태~!”
큭, 이 망할 것!
결국 그 건은 한 동안 우려 먹힐 거 같다.
그 걸 핑계로 날 또 어떻게 구워삶으려 들지, 벌써 한숨이 나오려 한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어서 팔 줘.”
갑자기 또 무슨 소리?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잠깐 머뭇거렸지만
어쨌든 단단히 약점 잡힌 상황에서 그 말을 안 들을 수 는 없다.
내가 주뼛주뼛, 오른팔을 내밀자…….
“헤헷!”
“야, 야! 지금 뭐하는…….”
내 옆으로 다가와선 내민 내 오른팔을 와락 끌어안는 키리노.
갑작스런 그 행동과 팔에 닿는 느낌에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하냐니? 우린 지금 연인 사이잖아?”
“뭐?”
“아직 역 앞 광장이라구! 혹시나 아까 경찰 분들이 보고 있는데
우리 사이가 데면데면 하면 다시 의심하실지도 모르잖아?”
하긴 맞는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을 펼칠 정도로 뜨거운 사이(?)임을
공인(?) 받아서 겨우 풀려났는데…….
‘팔짱 끼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지.’
‘그’ 휴대전화를 만천하에 공개한 마당에 뭐가 부끄럽고 뭐가 거리낄까.
아, 결코 내가 시스콘이라서 그런 게 아님을
부디 이 이야기를 보시는 분들만은 알아주시길!
“너랑 닮지 않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문득 키리노가 그렇게 속삭였다.
“뭐?”
“내가 너랑 닮지 않은 덕분에……. 연인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잖아?”
“오냐~! 네가 이렇게 평범해 빠진 날 닮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정말 즐겁다는 듯 웃는 녀석을 향해,
난 최대한, 녀석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빈정거림을 담아 그렇게 답했다.
“정말……, 닮지 않아서 다행이야!”
키리노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내 팔을 더욱 더 꼭 끌안았다.
병이 도젓......
지금 일하는 곳이 철저히 주 5일 근무를 지켜주는 곳인데......
한동안은 그 여유를 무조건 만끽했었는데,
결국은 좀이 쑤시더라~!
그래서 이것저것 공부 겸 번역 거리를 찾다가 결국,
익숙한 곳으로 가서 이렇게~
두 사람이 안 닮았다는 이야기는
'의남매설'까지 낳을 정도로 원작 내내 언급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 닮았다'는 설정 자체는 뭔가 이야기를 만들기엔 애매한 면이 있어서,
'양념' 이상의 되긴 힘든 면이 있는데......
이렇게 활용되다니, 쓰신 분의 재치가 놀랍다.
알게 뭐야!
난 오……, 아니 쿄우스케 분만 충전하면 돼!
네가 고생이 많다, 이 자식......
덧글
번역 고맙습니다. 비록 온라인 상이지만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