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렇게 난 원래의 세상.
내가 있어야할 그 곳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간들이…….
그 곳의 시간들이 마치 하룻밤의 꿈만 같다.
그렇게 또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나로 있었던 그 시간들이
어슴푸레한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눈을 뜨자…….
처음으로 보인 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날 내려다보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
내 손을 꼭 쥐고 있던 두 분은…….
내가 눈을 뜨자, 날 안고 오래오래 우셨다.
기적이라고 했다.
그 높고 가파른 계단에서 굴렀음에도…….
머리 쪽의 약간의 찰과상 외에는 전혀 외상이 없었다.
혹시나 뇌 쪽의 손상을 염려해 몇 가지 검사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도 전혀 없이, 내 몸은 멀쩡했다.
환자가 무사함을 이야기 하면서도,
약간은 어이없어하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내 무사함에 깊이 안도하던 부모님의 얼굴도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무엇보다 다행은…….
뱃속의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 몸이 더 회복된 후…….
아이들에 대해서도 여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이상 없음.
모체, 나만 건강하다면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에
난 안도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주요한 검사들이 끝나고, 내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드디어 가족 외 면회가 허락되었다.
“우아아앙~! 키리노쨩!!!”
날 보자마자 깡마른 내 몸을 껴안고 울기 시작하는 세나 선배.
아카기 선배, 미우라 선배, 마카베 선배…….
함께 온 동아리 선배들도 붉어진 눈으로
내 무사함을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들 틈틈이 찾아와주었다.
말동무도 해주고, 재미있는 책이나 게임도 가져다주고…….
그렇게 날 위해서 귀한 시간들을 써주었다.
그리고…….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아냐! 그런 소리 하지 마, 키리노쨩.”
부모님 말씀으로는…….
카오리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날 찾아와 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날 걱정하며 하루하루, 초조하게 내 회복을 바랐다고…….
그리고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최고의 의료 시설을 갖춘
지금의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해주셨다.
외부 면회가 처음으로 가능해질 정도로 내가 회복되고,
처음으로 동아리 선배들을 맞이했을 때…….
카오리씨는 그저 옅은 미소로, 담소를 나누는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셨다.
하지만…….
나중에 세나 선배에게 들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흐느끼는 카오리씨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내 앞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하셨지만 그녀 역시,
일련의 내 모습이 많이 가슴 아프셨던 것이다.
카오리씨 입장에선 남동생을 보낸 지 얼마 안 돼,
여동생처럼 귀여워하던 후배까지 잃을 뻔 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니 더더욱 미안하고…….
또 너무나 고마웠다.
또…….
“그래도……. 많이 아쉽네요. 갑자기…….
이렇게 떠나신다니…….”
“응……. 미안해, 키리노쨩.”
“아, 아니에요! 왜 카오리씨가 사과를…….”
카오리씨는 곧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너희들을 보면서……. 나도 생각이 많아지더라.
자주 떨어져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그 사람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
“…….”
“그래도 그 동안은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게 있었지만…….
그이와 바다 너머로 멀리, 그 것도 기약 없이
오랫동안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건, 역시나 좀…….”
“네…….”
카오리씨의 남편 되시는 분은 얼마 전,
미국 유명 대학의 의학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셨다고 한다.
국내에 계실 때도 바빠서 자주 못 보는 상황인데
남편 분께서 미국으로 떠나버리면 더더욱 함께 하기 힘든 두 사람.
그래서 결국 카오리씨도 국내의 일들을 청산하고,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남편 분은 이미 미국으로 떠나셨다고 한다.
그리고 카오리씨도 원래는 더 일찍 가셔야했다, 하지만…….
여러 일, 특히나 내 걱정에 출국 일정을 계속 미루고 계셨던 것이다.
“내 몸 때문에, 우린 제대로 된 신혼 생활 같은 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그 사람이랑 제대로 부부로서, 찐~하게 사랑해볼까 해!
뭐, 남편이 가는 곳에 마누라 된 몸으로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의무기도 하니까!”
“네, 그렇죠.”
“그동안……. 난 내 즐거움을 찾느라 바빴어.
뭐, 그이도 자기 일에 바쁘기는 했지만…….
어쨌든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 사람을
더 이상 외롭게 두는 건 안 될 것 같아.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람의 꿈은 내 꿈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잠깐 서글픈 표정으로 망설이는 카오리씨.
하지만 한 번 아랫입술을 깨문 후,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람의 앞날이란 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니까…….”
“…….”
“그래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해.
바쁘건 말건, 그 옆에 찰싹 붙어서……, 함께 행복해져 볼까 해!
그이의 꿈이 내 꿈인 것처럼, 내 행복이 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중에 지겹다고, 그만 달라붙으라고 한다 해도 말이지?”
“……, 네.”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오리씨.
그러다 특유의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뭐! 나정도 과분한 미인이 자기 마누라라고 생각한다면,
지긋지긋 하다고 해도, 그거 달린 남자라면 불평할 수 없겠지,
안 그래?”
“후훗, 카오리씨도 참!”
언젠가 카오리씨가 그랬다
나와 자기는 닮았다고…….
내가 저 만능 슈퍼우먼과 뭐가 닮았냐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있다.
어린 시절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병과 죽음의 절망을 안고 산 그녀.
세상이 허락하지 않을 사랑을 하고, 또한 그를 죽음으로 잃어버린 나.
우린 둘 다 그렇게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잔인한, 운명이란 이름의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런 속에서 방황하고, 슬퍼하고, 노력하고, 극복하고…….
그런 처절한 경험은, 닮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든다.
만약 그녀에게 언제 올지 모를 ‘죽음이라는 절망’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물론 겉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결국은 그게 다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굉장한 사람, 하지만…….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주변을 아우르는 깊음은 가지지 못하지 않았을까?
커다란 아픔을 이겨내고, 그 경험을 타인에게도 투영할 수 있는
강인하고도 넓은 마음을 가졌기에…….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아우르는 힘을 더불어 얻게 된 것이다.
그건 지식이나 능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
인간은, 그리고 인간관계는 계산이나 공식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진정한 리더란 타인의 마음을, 특히 아픔이나 고민 같은
약한 부분을 이해하고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게 부족한 사람은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왜 카오리씨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절망을 이해하며,
그런 극복의 과정을 치열하게 거친 그녀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본의는 아니지만…….
나 또한,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 동경하고 존경하는 그녀를 진정으로 닮길 원한다면…….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극복하고, 좀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나에겐 또 다른…….
남과는 다른 특별한 걸 가지고 있다.
“아, 맞다!”
뭔가 생각난 듯, 카오리씨가 입을 열었다.
“사오리……, 그러니까 내 동생이 내년에 완전히 귀국해.
지난번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서로 인사를 못 시켰는데.
어쨌든 그 녀석, 키리노쨩을 무척 보고 싶어 해.”
“아…….”
“네 안부를 전했더니……. 너랑 조카들……, 보고 싶다며 기대하더라.”
“……,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오리씨는 갑자기 헛기침을 하더니…….
“아무래도……, 그 자리에 내가 없을 것 같아서 미리 말해둘 게.
그 녀석, 만나면……. 제발 놀라지 마?
그런 거에 은근히 상처받는 녀석이니까.
무슨 소리냐 하면…….”
“알아요.”
내 대답에, 놀란 표정으로 날 보는 카오리씨.
그 보기 드문 얼굴에, 난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지었다.
“몸도 마음도……, 굉장히 큰 사람이잖아요?”
“어? 어, 어떻게…….”
더욱 놀라는 카오리씨.
그녀의 얼굴엔 ‘그걸 어떻게 알았어?’ 라고 써있었다.
알고 있다,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난……, 알게 되었다, 그 이상한 여행을 통해서…….
“…….”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 아래에서 벚꽃비가 기분 좋게 내리고 있었다.
“저, 먼저 들어갈 게요!”
“어, 수고했어!”
“주말 잘 보내!”
문을 열고 나오자, 기분 좋은 바람이 안겨온다.
“우웅~! 하아~!”
그 바람에, 일로 쌓인 피로가 반은 날아가는 느낌.
그런 기분 좋은 내 탄성을 들었을까?
내 앞에서 걷던 꼬마 아이가 날 돌아본다.
‘그 녀석들, 얌전히 잘 있으려나?’
그렇게 난 익숙한 그 곳을 향해, 익숙한 길을 걷는다.
20년 남짓한 내 시간 대부분을 함께 해준
이 거리, 이 풍경, 이 마을…….
그 안에서 난 편안한 행복을 느끼며 걷는다.
결국 난 대학을 그만 두고, 치바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준비했다, 새로운 만남을…….
부모님의 헌신적인 도움, 멀리서나마 날 걱정하고 응원하는 친구들,
그리고 내 간절한 바람 담아…….
사실…….
아이들의 아빠가 오빠임을 알았을 때,
아빠와 엄마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어린 아이처럼 울었고…….
아빠는 당신이 죄인이라며 가슴을 쥐어뜯으셨다.
하지만…….
아이들을 낳겠다는 내 결심을 막지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그 아이들을 오빠가 남긴 선물이라며,
날 따스하게 감싸고 힘을 주셨다.
가장 중요한 시기, 엄마가 그 지경이었건만…….
감사하고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건강했다.
그리고 무사히 만났다.
무섭고 힘들고 아팠지만…….
무엇보다 큰 간절함으로 그 것들을 이겨내고, 그렇게 우린 만났다.
먼저 태어난 아들은 료우스케.
조금 뒤에 태어난 딸은 유우노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만남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기쁨을 뒤로 하고, 몸을 추스르자마자 난 다시 일어섰다.
난 이 아이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님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가뜩이나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아이 둘이 생겼다는 건, 녹록치 않은 현실이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해도…….
난 어린 미혼모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없고, 엄마인 난 사회적으로 유능하다고 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들어갈 경제적인 부분은 내가 감당해야 하지만,
말처럼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난 한 발 더, 노력해야만 했다.
다행이 금방, 동네 보건소의 사무직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일단은 사무보조직이다 보니, 급료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집 근처에서, 짬짬이 아이들도 돌보며 일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일자리를 얻은 것이다.
사실, 처음 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었다.
이것저것 외워야할 것도 많고, 처방전이나 약품명, 예방 접종,
의학 관련 법률 등 전문적인 지식도 배워야했다.
무엇보다 사람, 그 것도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상대한다는 건…….
정신적으로 무척 고된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했고,
인턴 기간이 지나고 정직원이 되면서 월급도 오르는 등,
최선을 다해 적응해나가고 있다.
특히나 보건소 소장님의 도움이 컸다.
소장님은 마치 카오리씨가 50대가 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할 정도로 파워풀하고 활기찬, 그런 멋진 여성분이다.
처음 어리바리 댈 땐 눈물 쏙 나게 혼도 내셨지만,
언니처럼 엄마처럼 날 따뜻하게 지켜봐주셨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일처리가 야무지고 성실하다며, 날 좋게 봐주셨다.
“앞으로도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하게
마음 쓰며 일해주길 바랄 게요, 축하해요!”
정직원이 된 날.
소장님은 내 손을 꼭 쥐어주며, 그렇게 격려해 주셨다.
정직원이 되고, 업무에 완전히 적응한 후엔 한결 여유가 생겼다.
병원, 특히 보건소 사무업무라는 게,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간적으로는 꽤 여유가 있다.
아침, 저녁으로 반짝 바쁘고, 낮에는 비교적 한가하다.
그리고 수요일, 일요일 해서 쉴 수 있는 주 5일 근무.
그나마 토요일엔 오전 근무만 하면 된다.
평일 근무일, 퇴근 시간이 늦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다행히 소장님의 배려로, 그런 날도 저녁시간 잠깐,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직접 수유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받고 있다.
이런 여유로운 시간들을…….
난 한 동안 잊고 있던, 내 꿈에 투자하기로 했다.
바로…….
“음……, 아! 들어왔구나!”
토요일 퇴근 길.
평소처럼 마을 도서관에 들러, 지난번에 신청했던 소설책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빌릴 수 있음을 확인하고 서고로 향했다.
육아, 그 것도 한꺼번에 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 것도 일을 하면서 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나날이 건강하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
그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면 그런 힘겨움 따윈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
거기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도움도 내겐 큰 힘이다.
여자는 강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더 강하다!
내 생활의 모든 최우선 순위는 아이들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아이들이란 존재가 있기에 엄마는 무적이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좋은 엄마’를 넘어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게…….
한 인간으로서 꿈을 좇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 발달된 세상은 그런 노력에 큰 힘을 준다.
인터넷을 통해서 문학 관련 강좌나 프로 작가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인터넷 문학 관련 카페에서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짧은 기간, 게임 동아리에서 세나 선배와 마카베 선배에게 배운
컴퓨터 활용 능력이 이렇게 빛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밤늦게 까지 원고지와 씨름한다.
어설프지만 습작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쉬운 건 결코 아니다.
몇 번이고 코피를 쏟거나, 빈혈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안타까워 하시는 부모님의 시선에,
마음이 움츠러들 때도 있었다.
육아, 일, 공부와 습작…….
이 쳇바퀴 도는 내 일상이 지긋지긋 할 때도 사실, 있었다.
퇴근해서 오면 배고파 칭얼대는 료우스케와 유우노에게 젖을 물린다.
입이 둘이니 젖이 충분할 리 없다, 그래서 분유도 먹인다.
그 어쩔 수 없는 사실 조차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괜히 싫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밤에도 편하지 않다.
원고지와 씨름하는 틈틈이, 아니면 늦게 잠든 이 후에도
가끔 깨서 아이들을 봐야 한다.
그럴 때마다 주무시던 부모님도 깨신다.
싫은 내색은커녕, 오히려 귀엽다며 웃으시는 그 모습이…….
눈물 나게 고맙고, 또 죄송해서 힘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원고지 앞에 앉을 때…….
난 그런 내 부정적인 감정들을 되뇌며 팬을 움직인다.
내 힘겨움, 내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그런 것까지도 내 말로, 나의 색깔로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 과정은 일견, 고통과 비슷하다.
지금은 물론 과거의 나, 그 내면과도 마주하며…….
힘든 기억, 지우고픈 상처까지도 억지로 헤집으며 팬을 움직인다.
어설프게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어설프게 해선 안 된다!
나에게 있어 소설이란…….
오빠와의 마지막 약속이니까…….
마치 우리의 아이들처럼…….
최선을 다해 세상에 빛을 보게 해주고 싶다.
이것이…….
그 동안 그저 모두에게 도움만 받아왔던 나약한 내가…….
모두에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보답이기도 하니까!
“오랜만……, 이야.”
“……, 응.”
그 말처럼…….
이렇게 우리 집 거실에 마주 앉은 우리 둘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인 것처럼,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
“…….”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청초하고 온화한 인상에 아름다운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
“미안해, 키리노. 여기까지 오는데……. 많이 늦어 버려서…….”
“아냐. 사과하지 마, 아야세.”
그렇다.
우리는 그 날 이 후…….
처음으로 이렇게 마주하는 것이다.
오빠를 잃은 후, 나 역시 마음의 병을 앓았지만…….
아야세는 더욱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몇 차례의 자살기도.
약물복용과 그로 인한 중독, 금단증상과 몇 차례의 재중독.
장기 입원 치료 끝에 겨우겨우, 외출 허가를 받을 정도로 호전되어
짧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마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외출 시간이 끝나면, 아야세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
오랜만의 만남이 쑥스러운 듯, 짧아진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대는 아야세.
“머리, 잘랐네?”
“응…….”
과거, 그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미디엄 쇼트로 짧아졌다.
그 모습이 조금 낯설어,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
“…….”
우리의 과거를 말해주는 듯…….
둘 사이엔 띄엄띄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응?”
“아, 아니…….”
알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다시금 어색한 침묵에 쌓이려는 찰나…….
“우? 아우~! 웅……. 우아아앙~!”
잠에서 깼는지, 료우스케가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빠를 따라 유우노도 울음을 터뜨렸다.
“움마아아앙~!”
“암아아아앙~!”
“아, 그래, 그래~! 엄마, 여기 있어요~!”
난 황급히 거실 한 쪽, 아이들의 요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며 아이들을 달랬다.
그렇게 잠깐 요람을 흔들어주자…….
다행히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잠드는 료우스케와 유우노.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고 돌아서자…….
“아…….”
아야세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그 눈동자에 비친 건…….
“……, 아……. 아아…….”
그리고 그 커다란 눈동자가 물빛으로 빛난다.
떨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야세는 그렇게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 아야세.”
난 손을 뻗어 아야세의 팔을 잡고, 아이들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한 번 안아 봐, 아야세.”
“…….”
난 새근새근 잠든 료우스케를 조심스럽게 안아
아야세의 품에 안겨주었다.
“생각보다 무거워. 그리고 아직 목을 못 가누니까…….
이렇게 머리를 받치고…….”
“…….”
그렇게 료우스케는 아야세의 품에 안겼다.
“아……, 윽…….”
그 안은 팔이 가늘게 떨리고…….
눈동자에 차올랐던 물기가 눈가에 맺혀온다.
“흑……. 우우…….”
“…….”
그렇게 아야세의 젖은 뺨이 료우스케의 이마에 닿는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자식을 처음 품에 안은 엄마처럼…….
아야세는 료우스케를 안고 눈물 흘렸다.
“흐흑! 우아아앙~!”
“…….”
“흐흑……, 키리노……. 키리노오…….”
“…….”
아야세는 그렇게 울지만…….
아야세의 품에 안긴 료우스케는 편하게 잠들어있다.
유우노도 깨지 않았다.
“키, 키리노……. 나, 나있지…….”
“…….”
“나도……, 나도 이 아이들…….”
“…….”
“나도 이 아이들……, 키울 수 있게 해 줘!”
아야세는…….
그렇게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어 날 바라보았다.
“부탁할 게!”
“…….”
“제발! 이렇게 부탁할 게!”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무너뜨리며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제발……. 부탁해, 키리노!”
“…….”
“부탁이야, 키리노! 제발……, 제발 이렇게 부탁할 게…….”
나도 가만히,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료우스케의 목을 받치고 있는 아야세의 손에 내 손을 포갰다.
“흐흑…….”
“…….”
그리고 여전히 방울진 눈물이 흐르는
그 눈물을 훔쳐 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흑! 키리노…….”
“…….”
“고, 고마워……. 고마워 ,키리노……. 흐흑!”
만감이 교차했다.
중학교 시절, 친했던 그녀.
모두가 동경하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 같았던 그녀.
그럼에도 나와 친하게 지내주고, 날 친구로서 아껴주었던 그녀.
그리고 어른이 되어…….
도쿄라는 다른 곳에서 재회하게 되었던 그녀.
운명처럼, 저주처럼 한 남자를 함께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나처럼 오빠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흑……, 흐흑! 우아아앙~!”
“우아아아앙~!”
그렇게 우리는…….
마치 아기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울었다.
한 사람을 함께 모든 걸 걸고 함께 사랑했던 여자로서…….
그리고 그 사람을 함께 잃은 여자로서…….
난 아야세를 원망하거나 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원망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이해하니까…….
아프도록, 슬프도록 그 마음을 잘 아니까…….
아야세 역시, 나였던 거다.
아야세는 같은 차원에서 함께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였던 것이다.
결국 아야세는 오빠를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의 부정적이고 이중적인 면을 끝까지 외면해 버렸다.
난 오랜 이별 기간 동안 더욱 강해진 ‘이상적인 오빠’를
짧은 만남 동안 깨트리고 그의 모든 걸 품었다.
비록 친남매라는 한계로 인해, 돌아서려 했지만…….
난 한 인간으로서 오빠의 모든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이 후, 나에게 내려진 료우스케와 유우노라는 축복…….
그리고 아야세에게 있었던 힘겨운 시간들…….
그런 엇갈림은 어쩌면, 거기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을 동시에 잃었지만,
이렇게 다른 시간을 살게 된 건 어쩌면 그 갈림길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가야할 길을…….
아야세가 대신 간 건지도 모른다.
“흐흑! 고마워……, 고마워, 키리노…….”
“응! 흑, 고마워, 아야세……. 정말 고마워…….”
오랜 시간, 많은 엇갈림, 가슴 아픈 일들…….
그 모든 걸 극복한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 에필로그
“후우~!”
지금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평일 업무 시간.
당연히 그 깊은 고민의 원인은 업무상의 문제다.
내 입으로 말하기 참 뭐 하지만…….
난 이 XX문고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상사들에겐 무한한 신뢰를, 동료들에겐 부러움을, 후배들에겐 존경을…….
고학력에 남성 우월의식이 아직도 팽배한 출판 업계에서
난 나름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증거로…….
현재 출판사 편집부에 있는 여자 직원은 나 하나뿐이다.
대학도 중퇴하고 중요 간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퇴한 대학도, 이름을 말하면 “아, 거기요?” 라는 썰렁한 답이 나오는,
말 그대로 그저 그런 명성의 대학일 뿐이다.
‘뭐, ‘고등학교 때 공부 좀 더 할 걸.’ 이라는 후회가 아주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나름, 이 출판사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금만 해도, 난 내 직속 상사인 쿠마가이 편집장의 대리로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다.
가뜩이나 삐딱한 내가…….
고학력주의, 남성 우월주의 쩐 이 바닥에
처음 들어왔을 땐, 꽤 부침이 많았다.
신입에 여직원인 주제에 건방지게 나댄다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름 작품에 대한 독특하고 치밀한 안목을 인정받았다.
또한 내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타인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와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는 -별로 달가운 표현은 아니지만-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장점으로 통하고 있다.
거기다 나름 글을 쓰며 키웠던 문학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이 험난한 바닥에서 아득바득 버틸 힘을 주고 있다.
결국 그로 인해, 이렇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쿠마가이 편집장은
날 좀 더 인정하고 직급보다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뭐, 고맙다면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 버티려면 자존심은 필수기에 오히려 당연한 거라 여긴다.
꿈을 좇고 최선을 다하던 그 시절의 자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자기 글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힘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것들을 포기하고 이렇게 사회인이 되었을 땐…….
그 자리에 그 꿈을 포기한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경멸을 담아,
다른 글에 대해 가차 없는 이해와 평가를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피나게 노력했음에도 입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지난 과거가 억울하고 분통터진다.
또 글쓰기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 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꿈 근처에 한 발 정도 걸치고
그 걸로 밥을 벌어먹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확실히 나에겐, 반짝이는 그 무언가가 없었다.
대신 그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의 처음을 내가 발굴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고 있고, 주변의 인정도 받고 있다.
눈에 띄는 일은 아니지만…….
뒤에서, 어둠에서 땀을 흘리며, 양지를 더욱 빛나게 하는 역할인 것이다.
그 보람 역시 굉장히 큰 거란 걸 난 잘 알고 있다.
‘무슨 조폭이나 정보기관 사람 같네?’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원하는 건 오히려 더 손에 넣기 힘들다.
그리고 힘들수록 더 원하게 된다.
정작 자신에게 있는, 타인이 부러워할 만한 보물을 모르는 채 말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나, 지금 뭐하니?’
결국 그거다, 나 잠깐 현실 도피를 했다.
‘이런 쓸 데 없는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난 미간을 긁으며, 작금의 사태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래, 일단…….
마주 앉은, 저 여자 응모자에게 한 마디 해줘야 할 것 같다.
“…….”
그 전에 일단, 다시 한 번 그녀를 살펴봤다.
이런 자리가 낯선 듯, 잔뜩 긴장한 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뭔가 오묘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가…….
뭐랄까?
사연이 많아 보인다고나 할까, 뭔가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뭐, 수많은 신인 작가들을 상대해 보면서
그런 걸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도 될 거는 같지만…….
“하아~! 일단 좀 어이가 없네요? 공모전에 응모하겠다는 사람이…….
응모 기간을 넘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 그, 그 점은 정말…….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뭐, 그 점도 참 뭐한 부분이지만.
당신 원고는 읽히지도 않고 폐기됐을 거란 걸, 당신도 잘 알고 있겠죠?”
“아, 네…….”
이야기 듣기로는…….
우리 출판사의 출판물들의 전자책 관련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마키시마 그룹의 문화산업 관련부서 책임자가
사장님에게 직접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 배구선수처럼 키 큰 여자, 맞지?’
그 뿐만이 아니라, 마키시마 그룹은 우리 출판사에
막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
사장님이 아니라 사장님 할아버지라도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뭐, 그런 건 사회인으로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서 솔직한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그저 그러네요, 이 정도 작품 때문에 규칙마저 어겨야 했나, 싶을 정도로.
뭐, 그런 연줄이 있다는 게 능력이면 능력이고, 재주면 재주겠지만…….”
“저, 정말 죄송합니다.”
눈앞의 여성.
코우사카 키리노라는 이름의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표한다.
인상이 옅긴 하지만 정말 미인이다.
오히려 그 옅은 느낌마저도 청초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오밀조밀 단정한 이목구비, 선하고 얌전하지만 야무진 인상.
검은 비단 같은 긴 머리는 그 미모에 화룡점정이다.
마치 한 송이 배꽃 같은 그런 가련함을 가진 여자다.
내가 남자라면 반드시 반했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
취향차가 있다 해도, 남자라면 한 번은 돌아볼만한 미모.
말 그대로 금지옥엽, 귀하디귀하게 자란 공주님이란 인상이었다.
연약한 목소리, 주눅 든 듯 소심한 행동거지도
남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니, 자기 힘을 이용해 원칙이고 예의고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특혜를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리라…….
나에게 있어 코우사카 키리노란 인간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아까, 내가 멘탈 붕괴해서 현실 도피를 하고,
방금처럼 마음에도 없는 독설을 그녀에게 날렸던 건…….
그녀가 응모한 소설을 잃고 나서, 그런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
극적으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꽃 같은 게 아니다!
허망하게 지고 말 그런 꽃이 아닌…….
너무나 탐스럽고 멋진 열매를 맺을 줄 아는…….
그녀는 그런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나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다름 아닌 그녀의 글, 소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가?
보통 응모자들의 프로필을 보면…….
날고 긴다는 대학의 국문과를 나왔거나,
화려한 동인 활동을 이력으로 가진 사람이 부지기수다.
도저히 모르겠다.
그저 보건소에서 일한다는 이 사람이 제출한 작품이
출간 되었을 때, 도대체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킬지…….
나름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거친 나조차도,
그 순간엔 도저히 계산이 서지 않았다.
“진심이에요?”
“……, 네.”
쿠마가이 류노스케.
XX문고의 편집과의 편집장이자 내 직속상관.
얼굴만 봤을 땐, 모 격투게임의 우락부락한 권법가가 떠오르지만,
사실은 유쾌한 성격에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다.
“이오리씨, 방금 당신이 한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건가요?”
“…….”
뼈저리게 알고 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경력 전부를 거는, 말도 안 되는 도박이고…….
회사의 대외적인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이다.
“대상 수상자와의 인터뷰가 끝났어요!
이미 대상 작가와 작품에 대한 홍보 내용이 언론사에 뿌려졌고,
작가 인터뷰와 발행 예고를 실은 다음 회 잡지가 곧 인쇄 들어가요!
그걸 지금 와서 다 뒤엎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
그 말씀 그대로…….
이번 우리 출판사 주최 소설 공모전은 이미 끝났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이번 공모전의 우승자에겐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오리씨 짬밥이면 눈치가 빤하다고 생각하고,
마키시마씨의 부탁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 거라고요!”
“…….”
“이오리씨?”
“…….”
“……. 하아~! 저기, 페이트쨩.”
갑자기 편집장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
그렇게 부른다는 건, 편집장님…….
쿠마가이 선배는 지금 편집장과 직원이 아닌,
출판계와 문학계의 같은 종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내 진심을 듣고 싶은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답지 않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
“페이트쨩, 그 동안 정말 잘해왔어. 소설가의 꿈을 지속하던 자네를…….
억지로 출판사에 끌어들인 건,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현장에서 모두들 페이트쨩을 믿고 있고, 실제로도 페이트쨩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 산처럼 있을 정도로 자넨 중요한 사람이야.”
“…….”
“그런데 왜 이런 무책임한 소릴 하는 거야?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 봐.”
“…….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읽어보시라는 것뿐입니다.”
선배의 얼굴엔 의아함이 더욱 커졌다.
“읽어보라니……. 마키시마씨가 부탁했던 그 작품, 말인가?”
“네…….”
난 고개를 끄덕인 후,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저도 사실은 그냥 무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읽는 시늉만 하고, 잘 타일러 돌려보내려 했죠. 하지만…….”
난 다시금 마른침을 삼키고, 살짝 눈동자에
힘을 넣어 쿠마가이 선배를 바라보았다.
“코우사카 키리노, 그녀의 작품은 ‘진짜’입니다!”
“진짜?”
“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그런 마력을 가진 작품입니다!”
“…….”
잠깐의 침묵…….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배가 다시 눈을 들어 노려보듯 날 바라본다.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 작품인가?”
“네.”
“회사의 신뢰와, 한 개인의 환희를 뭉갤 정도로?”
“그렇습니다.”
내 또렷한 목소리에…….
선배는 의자 받침에 등을 기대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뒷목을 감싸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그 코우사카 키리노라는 사람의 작품이 대단하다는 건 잘 알겠어.
자네 안목이야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믿어, 하지만…….”
“…….”
“회사 입장에서 신뢰와 원칙을 깬다는 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
“자네도 잘 알다시피……. ‘좋은 작품’과 ‘팔리는 작품’은 달라!
거기다 이번 대상 작품은 ‘팔리는 작품’으로서
치밀한 계획이 이미 진행 중이란 말이야!
회사의 신뢰와 원칙, 진행 중인 걸 중단해야한다는
현실적인 손해까지 감수하려면…….
그 작품으로 엄청난 성공이라는 결과를 반드시 내야만 한다고!”
“쿠마가이 선배!”
난 기다렸던 말에, 더욱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코우사카 키리노씨의 작품은 출판사 매출이라는 측면을 봤을 때에도…….
성공 가능성이 엄청나게 크다고 믿습니다!”
“…….”
“문학계의 대호평과 대박 판매량!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
“물론 이번 대상작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더 좋은 작품이 나온 입장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선배는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나오면……, 뒷일 생각하지 말고 밀어붙여라!
이렇게 말씀하신 건, 선배님이잖아요?”
“…….”
내 말에 쿠마가이 선배는 멍한 시선으로 공중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체념과 함께…….
묘한 성취감 같은 것도 있었다.
“……. 그래, 알았어!”
“……! 고, 고맙습니다, 선배!”
“훗~! 일 관련해서 페이트쨩 웃는 거,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네?”
내 반문에 대답하지 않고, 선배는
책상에 두 손을 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이오리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최대한 신속하고
디메리트가 적은 방향으로 기획, 준비해 놓으세요.”
“아,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난~! 윗분들께 왕창 깨지러 가 볼까~!”
“역시……. 편집부에게 벼락이 떨어지겠죠?”
“뭐, 편집부에 벼락이 떨어지는 선에서 끝난다면 다행이고…….
이 나이에 다른 부서나 인쇄소 같은 외주 업체에게
면상 금가는 소리, 듣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특히나 이 친구에게서 뭔 소리를 들을지, 벌써부터 겁나네.”
그렇게 웃으며 편집장님이 건네는 서류 맨 위에는…….
이번 신인 공모전의 대상을 받은 작가의 프로필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이 사람, 얼굴은 처음 보네?’
그녀 역시 미인이었다.
코우사카 키리노와는 다른 느낌의…….
‘필명 쿠로네코, 성명 고코우 루리.’
치열한 공모전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지만…….
결국 불운이랄지, 안타까운 새치기를 당했다고나 할지?
프로필 뒤에는, 다음 달 잡지에 실릴 예정이었던 인터뷰와
이 작품에 대한 홍보 기획서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왼쪽 눈 아래엔 눈물점.
그런 차갑고 이지적인 미인인 작가의 이미지,
그리고 그 외모와 묘하게 어울리는 무겁고 어두운 작품 내용.
또한 앙칼진 독설이 담긴 인터뷰 내용 등.
훌륭한 그녀의 작품에 뛰어난 미모, 그리고 그런 거침없는 성격을 엮어,
회사 차원에서 크게 띄워보려는 기획이 잡혀있었다.
“흠…….”
수줍음 많고 얌전해 보이지만, 무궁무진하고 강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코우사카 키리노.
자신만만하고 지적이며 차가운 인상, 하지만 강한 열정을 담은 눈을 가진
고코우 루리.
“후훗~!”
그런 두 사람을 떠올리는 내 얼굴엔…….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지어졌다.
‘이 두 사람……. 꽤 끈질기고 재미있는 인연이 되겠는 걸?’
그리고 뜬금없이…….
그런 묘한 확신이 드는 ‘나’였다!
아, 끝났다~!
반 년 넘게 아등바등 했던 이 작품이 드디어 끝났다~!
하하......
그냥 시원하다.
지난 여름, 잠깐의 중단 이 후......
갑자기 엉뚱하게 튄 2부의 내용에 멘붕하기도 하고......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각 에피소드 별로 글 수준의 차이가 심해서 참 힘들었는데~
뭐, 끝난 마당에 이제 다 옛날 이야기가 된 거지 뭐~!
치열한 삶을 살아야할 2부 세계의 키리노를 중심으로......
다시금 원작에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이 재편되는 느낌을
비교적 담담하게 잘 그리고 끝맺은 것 같다.
무엇보다 '쿄우스케의 상실'을 극복하고,
'어머니와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은 키리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숙제인, 아야세와의 관계......
그 부분도 무난하게 잘 마무리 되었다.
결국 2부의 마무리도......
쿄우스케가 없는 것만 빼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 이제 다시는 장편은 -뭐, 할만한 작품도 안 나오겠지만?-
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허허~
덧글
항상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근데 전 아직도 내여귀만 빠는지라...
쫌 논h동인지같은거 더 잇으시면 제목만쫌 부탁드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