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15분.
코우사카가의 장남, 쿄우스케의 방.
“……, 저……, 저기, 키리노? ……, 자, 자냐?”
난 내 침대에 누워있는 키리노에게 작게 말을 걸어보았다.
“응……, 우응? 뭐야, 당연히 자지, 그럼!”
자다 깬 키리노는 평소보다 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 이, 있잖아…….”
“왜?”
“저기, 그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키리노는 움찔, 몸을 떨며 긴장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뭐?!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 할 수 없잖아, 이 상태에선! 더는 못 참겠단 말이야!”
“야, 야! 목소리가 커! 엄마, 아빠 깨면 어쩌려고…….”
“두 분, 지금 안 계시잖아.”
“아! ……, 읏…….”
그제야 두 분이 안 계시다는 사실이 떠올랐는지,
우물쭈물 어쩔 줄 모르던 키리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정말……, 차, 참을 수 없는 거야?”
“응, 미칠 것 같다.”
“……, 그, 그렇다면……, 조, 좋아…….”
“저, 정말?”
“솔직히……, 나도……, 기,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래? 고맙다.”
“바, 바보 오빠……. 아프지 않게……, 부탁해.”
키리노는 결심한 듯, 긴장한 표정으로 그 작은 몸을 움츠렸다.
그나저나…….
젠장, 아야세, 내 이 걸 그냥!
지금으로부터 대략 10시간 전.
아라가키가 아야세의 방.
“오빠는 레알 변태인 거죠?”
뭐? 레알 변태? 내가?!
그나저나 아야세씨, 언제부터 ‘레알’같은 말을 쓰셨습니까?
내가 아야세의 초대로 이 집에 들어온 건, 이 번이 두 번째.
오늘은 키리노 동반이라는 조건이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 남매를 함께 부르다니,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다.
기대와 불안을 대략 8 대 2 정도의 비율로 두고, 아라가키가를 방문했다.
그런데 앉자마자 들은 소리가 저거다.
아무래도 ‘여동생을 엉큼한 눈으로 보고 있는 변태 짐승 오빠’로 결정한 날
드디어 끝장내려고 부른 모양이다.
“키리노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연합니다! 이 인간은 여동생에게 욕정을 품은 파렴치한입니다.”
“야! 아무리 농담이라도 정도껏 해라!”
“시끄러, 이 시스콘!”
“난 시스콘 아니거든!”
“웃기시네! ……. 저기, 아야세. 나 화장실 좀…….”
익숙한 그 대사 이 후, 키리노는
대화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그래. 자, 그럼 오빠는 양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아야세의 손에는
은빛 광택이 눈부신 수갑이 들려있었다.
아, 또 그 결박 플레이십니까?
……, 스스로 한 농담이지만 참 싫다.
“아, 아야세? 그게 뭐야?”
“뭐긴, 키리노가 없는 동안 오빠랑 단 둘이 있게 되잖아?
그 것마저도 불쾌한데, 혹시나 이 짐승이 무슨 짓을 하면 어떡해?”
“……. …….”
키리노까지 황당하다는 표정이잖아!
봐, 눈이 점이 됐네?
“어서요, 오빠. 손, 이리 주세요.”
수갑을 든 아야세가 그 광채를 잃은 눈동자를 하고는 다가온다.
그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꺅! 뭐, 뭐야?! 정전?”
키리노의 비명소리.
앗싸!
이 틈에 도망가자!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억을 더듬어 방 출입문을 향해 움직였다.
“거기 서랏!!!”
우왓?!
아, 야야세 녀석, 웬 고함을!
공허함을 담은 두 개의 눈동자가 살기를 번득이며 달려드는 느낌.
그리고 팔을 잡아당기는 엄청난 힘에 난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자리가 마침, 방금까지 키리노가 앉았던 방석이었던 모양.
달콤한 향기가 난다.
‘이 변태 녀석, 운도 좋군!’ 이란 생각은 말아주시길, 순전히 우연이다.
내 오른쪽 손목에 차가운 금속이 감기는 느낌, 그리고 ‘철컥!’ 하는 소리.
그리고 거의 동시에 또 한 번,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아, 아버지가 이 꼴을 보시면 어떤 표정 지으실까?
그래도 명색이 경찰 아들인데, 죄도 없는데 수갑이나 차고 있는 꼴이라니…….
최악이다, 아야세가 불렀을 때, 이런 사태 정도는 예상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전기가 돌아왔는지, 다시 전등이 켜졌다.
방금 내가 최악이라고 했던가?
그거, 취소다.
이 상황에 비하면 무고하게 수갑 차는 것쯤은 오히려 행복한 일이다.
밝아진 방 안의 상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내 오른 손목엔 아야세가 채운 수갑이 감겨있었다.
그리고 왼팔은……, 다행히 -물론 잠시 후, 차라리 채워져 있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자유로웠다.
아야세 녀석, 겨우 한 쪽 밖에 못 채웠구나,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아야!”
왼 팔목에 수갑을 감은 키리노가 비명을 질렀다.
…….
자, 잠깐, 잠깐만?
우리,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보자고?
아야세의 불합리한 수갑 플레이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나는 정전을 틈타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아야세에게 잡혀 넘어졌고…….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야세는 내 오른팔과 키리노의 왼팔에
각각 수갑을 채워버렸다?
흠, 대충 그런 이야기군.
“어머, 나의 실수. 데헷~!”
아, 역시 아야세땅은 귀여워~!
하지만…….
““‘데헷!’같은 소리하고 있네!!!””
오랜만에 우리 남매의 마음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우리 둘의 처절한 외침을 듣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지,
아야세는 허둥지둥 수갑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아, 그, 그러니까……. 열쇠, 수갑 열쇠가……. 아…….”
“……, 왜……, 왜 그래, 아야세?”
키리노가 불안한 목소리로, 굳어진 아야세의 뒷모습을 향해 말을 건다.
에이~, 아니겠지?
요즘엔 만화에서도 안 쓰는 상황 설정이라고!
설마 ‘열쇠가 없어요, 잃어버린 것 같아요.’ 란 소리는 안 하시겠죠?
네, 그렇죠, 아야세씨?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미안해, 키리노~! 열쇠가 없네, 데헷!”
아니,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 그 귀여운 개인기를 펼쳐봤자 의미 없다니깐!
어쩔 거야, 이 거!
그냥도 사이가 나쁜 나랑 키리노를 언제까지 이렇게 둘 셈이야?!
이 것 봐, 키리노는 이미 사색이 되었다고!
“저, 저기……. 아, 아……, 아야세?”
사색이 된 키리노가 불안하게 안절부절 못한다.
왜 이러……,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정전 직전에 화장실 간다고 했었지?
“……, 혹시 화장실 때문에 그러냐?”
“윽…….”
“갔다 오지 그래? 아야세네, 자주 와봤으니 어딘지 알 것 아냐?”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가?!”
“아, 그렇구나. 그럼 같이 가자.”
“뭐!!! 가, 같이 가겠다니, 이 변태가!!!”
“변태는 무슨! 다른 방법이 없잖아!”
“시끄러, 이 변태 시스콘! ……, 아, 아야세?!”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던 키리노는 순간, 놀란 표정으로 소리 친다.
그 순간, 난 뒷머리에 둔탁한 충격을 느낀다.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오빠? 이제 정신 좀 차려보세요!”
아, 마이 러블리 엔젤 아야세땅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와~요!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어요. 요즘 피곤하신가 봐요.
그치, 키리노?”
“응? 아, 응……. 그, 그런 가봐…….”
“화장실은 어쨌냐?”
“오빠가 쓰러진 사이에 무사히 다녀왔어요. 그치, 키리노?”
“어? 으, 으응…….”
“어머, 오빠 머리에 혹이! 넘어질 때 부딪쳤나 봐요.”
“아, 그러고 보니……. 머리가 좀 아프네…….”
다행히 화장실 문제는 해결된 것 같다.
그나저나…….
아까까지 탁자 위에 잘 있던 크리스털 장식품이 왜 박살이 나 있을까?
내가 쓰러진 동안 지진이라도 난 건가?
같은 날, 오후 6시 45분
아야세네 집에서 코우사카가로 가는 길 중간.
“야! 너무 붙지 좀 마!”
“어쩔 수 없잖아, 이 상태에선!”
결국 수갑 열쇠는 찾지 못했고…….
내일이나 되어야, 열쇠를 구할 수 있다는 상황.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오른팔과 키리노의 왼팔이
수갑으로 연결된 상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야세는 자기 집을 나서는 키리노에게
치한 퇴치용 호신기기를 꼭 쥐어주었다.
나와 키리노는 수갑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찰싹 붙은 채로 집을 향해 걸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세련된 차림의 키리노가
찍어낸 듯 평범한 나와 딱 붙어서 거리를 걷는 모습.
이미 많이 어두워졌건만,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도록 느껴진다.
힐끔 대며 우릴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우리를 어떤 관계로 보는 걸까?
설마 다정한 연인?
분에 넘친 애인을 둔 행운남?
아서라, 아서…….
차라리 관계가 의심스러운 변태 남매를 보는 호기심의 시선이겠지…….
우릴 아는 사람이 보면 의심한다 해도 할 말 없는 상태니…….
“어라~? 키리노네?”
옥타브 높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젠장, 망할 꼬맹이 카나코다.
“뭐야~, 예전 그 남친이잖아? 아주 뜨거운데, 두 사람!”
“아, 뭐……. 그, 그렇다고……, 할까…….”
“호~! 이 남자, 진짜 키리노 애인이었구나?!”
“아, 그게……. 카나코쨩, 이었지? 그냥 못 본 척 해주면 안 될까?”
“그럼, 비밀 지켜주는 대신, 500엔만 내놔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카나코.
이노무 꼬맹이가…….
이걸 핑계로 뜯어낼 샘인가?
뭐, 다행이 비싸진 않네.
“만 엔짜리 뿐인데……. 바꿔줄 잔돈, 있어?”
“응, 있어요.”
“정말?”
“응!”
“그 정도면 500엔 같은 푼돈은 필요 없겠네?”
“짠돌이!”
“째려보지 마라~.”
그렇게 귀찮은 꼬맹이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잠깐 한 숨을 돌리며, 나처럼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 있을
키리노에게 물었다.
“저기, 있잖아? 우리, 어떻게 보일까, 다른 사람에게는?”
“아, 정말!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괜히 말 꺼내지 마!”
그렇게 말하며, 키리노는 허리로 밀치듯, 내 옆구리를 찌른다.
평소 같으면 팔꿈치를 썼겠지만, 잘못 팔을 움직였다간
수갑이 드러나니, 어쩔 수 없이 그러는 모양이다.
나 역시 짜증이 잔뜩 나있는 상태라, 그 동작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지기 싫다는 듯, 키리노는 다시 옆구리로 날 찌른다.
결국 집에까지 내내, 우린 서로에게 짜증을 듬뿍 담아 공격을 주고받았다.
하여튼 성질머리 하고는…….
그 날 오후 7시 30분 경.
코우사카가의 거실.
나와 키리노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나는 오른팔,
키리노는 왼팔을 식탁 위에 올려둔 채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마치 대판 싸웠지만, 식사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은
부부 같은 실로 어색하고 거북한 분위기.
마침 아버지와 어머닌,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간 상황.
내일까지 두 분 다, 집에 안 계신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머니가 만들어 두고 간 카레를 데워서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하지만, 준비야 함께 그럭저럭 해냈지만…….
왼손으로 수저를 쓰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편하고 힘들었다.
반면 키리노는 오른손이 자유로워, 평소 속도로 식사를 하고 있다.
“왜 그렇게 먹는 게 굼떠?”
마치 급식 당번이 가장 마지막까지 먹고 있는 친구에게 불평하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한 마디 하는 키리노.
난 서둘러서, 불편한 왼손으로 열심히 수저를 움직였다.
겨우 그릇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설거지를 위해 싱크대를 향했다.
그러자 키리노는 그런 내 움직임에 맞춰 따라온다.
수갑이 없는 듯, 무척 자연스러운 움직임.
마치 내 움직임을 미리 읽고 맞춰주는 것 같다.
“아야, 아프잖아! 이 쪽으로 와.”
반면 난 키리노의 움직임을 전혀 알 수 없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수갑에 연결된 키리노의 왼팔을 잡아당기는 꼴이 된다.
뭐지, 이 차이는…….
“모델 일을 하다보면 자동적으로 몸에 익는 습성이야.
눈썰미만 좀 있으면 간단한 거야.”
모델 일이란 게 지시하는 사람의 요구를 빠르게 이해하고,
동료 모델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포즈를 취하거나 워킹을 할 때, 상대의 요구와 움직임을 예측해
자신의 움직임을 순간순간 결정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본능처럼 숙달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맞출 수 있단다.
대단하십니다, 우리의 독자 모델님…….
그나저나 이 녀석, 내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니…….
괜히 오한이 든다.
오후 8시 30분, 탈의실.
드디어…….
제일 무섭고 맞닥뜨리기 싫었던 목욕탕 이벤트 신에 돌입했다.
어쨌든 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상황.
옷을 벗고 갈아입는 것도 사실 상 불가능하다.
내일은 휴일이고, 하루 정도 목욕 안 한다고 뭔 일이 나는 건 아니지만…….
샤워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키리노의 끈질긴 주장에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옷은 어떻게 하냐는 말에 벗어서 내 오른팔 쪽에
대충 뒀다가 샤워를 마치고 다시 입으면 된단다.
그럼 샤워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내가 목욕탕 문 너머로 있으면 어떻게든 된단다.
물론 내 눈에는 수건으로 만든 눈가리개가 채워졌지만.
이 딴 거, 필요 없거든!
보라고 해도 안 봐!
그렇게 지금, 키리노는 샤워 중이다.
난 팔꿈치까지만 목욕탕에 넣어 놓은 상태.
웃기지?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냐?
나 정말 대인배 아니냐고!
가끔 키리노의 젖은 머리카락 같은 것이 손등을 스친다.
뭐, 이 정도 자극이야…….
“야, 뭐하는 거야! 너, 지금 내 엉덩이 만졌지!”
뭐야, 방금 닿은 건 이 녀석 엉덩이였나?
“웃기지마, 우연히 닿은 거라고! 거기다 방금 손등이었거든!”
“뭐?! 치한 짓 하는 인간이 꼭 그런 소리하지, 이 변태야!”
아, 그래~, 까짓 거 변태, 하지 뭐…….
수갑으로 여동생이랑 연결된 채, 문 사이로 샤워하는 여동생이랑
같은 공간에 있는 오빠니, 누가 봐도 어엿한 변태지요.
확인, 감사합니다!
샤워를 마친 키리노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따뜻한 바람에 실려, 키리노가 애용하는 샴푸향이 나의 코를 자극한다.
이, 이 공격은 살짝 강력하군.
그래도 동요하지 마라, 쿄우스케!
밤 10시, 키리노의 방
“저기, 게임 좀 하자구! 이 루트, 어떤 엔딩인지 빨리 보고 싶단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이 여동생님께선 에로게임을 하셔야겠다고 합니다.
“게임이고 나발이고, 난 오늘 더 이상 아무 것도 하기 싫거든!”
“웅……. 그치만 이 게임, 되게 재미있다고 하던데…….”
“……. 그, 그러냐? 그렇다면 조금만…….”
결국 키리노의 방, 탁자 위에 노트북을 놓고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오해는 마시라, 어디까지나 게임을 할 뿐이니까.
이런 자세라면 수갑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이고…….
그나저나…….
수갑으로 연결된 남매가, 같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에로 게임을 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무척 변태스러운 상황이다.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부모님 볼 면목이 없다.
말로 표현하기 거시기한 화면을 바라보며 난 기도했다.
혹 우리가 곧 죽을 운명이라면, 딱 하루만 늦춰달라고…….
지금 이 상황에선 죽어도 못 죽는다고…….
새벽 1시 40분, 쿄우스케의 방.
두 번째로 두려웠던 잠자리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각기 자기 방에서 자는 건 당연히 안 된다.
결국 어느 한 쪽이 누군가의 방에서 함께 자야 한다.
키리노는 자기 침대에 이상한 냄새가 배니, 이불이 더러워지니 하며,
한사코 자기 방에선 같이 잘 수 없단다.
결국 내 방에서 함께 자게 된 건데…….
거기에 더해, 침대 밑 내 보물 상자의 하룻밤 복도 유배형이 추가되었다.
이 시간까지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은 서로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며
불을 끄고선 침대에 서로 등을 돌리고, 모로 누웠다.
괜히 긴장된다.
이렇게 붙어서 자는 거, 처음인가?
아니, 예전 어렸을 때, 이렇게 붙어서 잔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저기, 뭐 좀 물어봐도 되냐?”
“뭐?”
“음……. 아냐, 됐어.”
“뭐야, 기분 나쁘게!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니, 네가 화를 낼 것 같아서…….”
“뭔데? 괜히 궁금해지잖아!”
“화, 안 낼 거냐?”
“아, 그래, 그래, 화 안 낼게. 뭐야?”
“그……, 그게……. 네 모……, 몸에 관한 건데…….”
퍽!
말 끝나기 무섭게, 등 뒤에서 멋진 니킥이 내 옆구리에 꽂혔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힌다.
“무, 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변태! 시스콘! 당장 죽어!”
“이, 이미 죽을 것 같……. 역시 화 내잖아!”
“네가 내 모……, 몸에 관심 있다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관심 있단 소리가 아니거든! 그냥 좀 궁금한 게 있을 뿐이야!”
“……, 뭐, 뭐가 궁금한데?”
“몸……, 이라기 보다는 얼굴 쪽인데…….”
“왜 얼굴이 동그라냐는 소리하면, 정말 죽인다?”
“그런 거 아냐, 단지……. 흠……. 그래, 너 자신도 잘 모를 수 있겠다.”
“무슨 소리야, 내 몸인데. 거기다 늘 신경 써서 가꾸고 꾸미고 있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인기 독자 모델은 그냥 하는 줄 알아? 뭐든지 물어 봐!”
코웃음까지 치며 자신감을 보이는 키리노, 그래서 물었다.
“저기, 너 웃을 때, 왜 한 쪽 송곳니만 살짝 보이냐?”
“질문이 잘못됐어!”
“너무 빠르잖아!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라!”
“꼭 알고 싶으면, 칸자키 선생님에게 물어 보던가.”
“그게 누구냐?”
“너랑도 관련 있는 분이야, 그 것도 아주 많이.
자, 그럼 질문 시간은 여기서 끝!”
하여튼…….
귀여운 구석이라곤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다.
새벽 3시 15분, 쿄우스케의 방.
아, 이거 큰일 났다.
화장실 가고 싶다.
그런데 지금 상황…….
화장실에 가기 위해선 먼저 키리노부터 깨워서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데 내가 이 새벽에, 그런 소릴, 어떻게 여동생에게 할 수 있겠…….
아니, 지금은 고민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 저……, 저기, 키리노? ……, 자, 자냐?”
난 내 침대에 누워, 소록소록 숨소리를 내고 있는 키리노에게 속삭였다.
“응……, 우응? 뭐야, 당연히 자지, 그럼!”
“……, 이, 있잖아…….”
“왜?”
“저기, 그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키리노는 움찔, 몸을 떨며 긴장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뭐?!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 할 수 없잖아, 이 상태에선! 더는 못 참겠단 말이야!”
“야, 야! 목소리가 커! 엄마, 아빠 깨면 어쩌려고…….”
“두 분, 지금 안 계시잖아.”
“아! ……, 읏…….”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한 밤 중에, 남이 화장실 가는데 따라가선
그 적나라한 사운드를 감상할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처지겠지.
나 역시 상상만으로도 싫은데, 사춘기 여자애라면 오죽할까.
하지만…….
그래 주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 곳에서 지옥문이 열릴 판이다.
“저……, 정말……, 차, 참을 수 없는 거야?”
“응, 미칠 것 같다.”
“……, 그, 그렇다면……, 조, 좋아…….”
“저, 정말?”
“솔직히……, 나도……, 기,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래? 고맙다.”
“바, 바보 오빠……. 아프지 않게……, 부탁해.”
키리노는 결심한 듯, 긴장한 표정으로 그 작은 몸을 움츠렸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프지 않게’ 라는
키리노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키리노를 반쯤 질질 끌고 화장실로 돌진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마치고 나왔더니, 저승사자로 변신한 여동생님께서
검사, 판사, 사형집행관 1인 3역의 상황극을 순식간에 소화하시더니,
나에게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을 맛보게 해 주셨어요.
아니, 순순히 ‘좋다.’고, ‘자기도 기다리고 있었다.’ 고 말한 주제에.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저 속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내 다시, 저 녀석에게 뭐 부탁하나 봐라!
다음 날, 오전 10시 키리노의 방.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키리노의 방에서 에로 게임을 하다 보니, 초인종이 울렸다.
누가 온 모양.
“어, 어떡해!”
순간, 키리노가 외쳤다.
오늘 나 모르게, 쿠로네코와 사오리가 놀러오기로 한 모양이다.
“어떡할 거야!”
“이런 모습을 두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잖아!”
“사정을 설명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사진이라도 찍겠다고 하면 어떡할래?
이 꼴이 영원히 남을 수도 있다고!”
그, 그건 좀…….
특히 쿠로네코라면, 이 걸 거리로 뭔 짓을 할지 모르겠다.
일단 수갑을 들키지 않게 하기위해, 함께 나가기로 했다.
“어, 어서 와.”
“와, 왔냐?”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 둘의 모습을 본
쿠로네코와 사오리는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이해한다.
일요일 아침,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그 친구가 오빠랑
찰싹 달라붙어선 자기를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라도 한 소리 하고 싶을 텐데 하물며…….
“너, 너희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이 것은! 혹시 새로운 플레이의 일종입니까?”
다른 표정으로 관심을 보이는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하고 차를 준비했다.
나와 키리노는 계속 착 붙어선, 무슨 싱크로 하듯
모든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차를 내놓고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우리를 보는
쿠로네코와 사오리의 머리 위엔 한가득 물음표들이 통통 튄다.
“이게 무슨 일이지? 혹시 우리 두 사람, 사악한 힘에 의해
마의 공간으로 소환된 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요. 오히려 소인은 다정한 두 분의 모습에
질투가 날 정도인 걸요?”
뭐, 두 사람의 반응은 당연한 거다.
꾹 하고, 키리노가 허리로 날 찌른다.
키리노의 얼굴을 보니, ‘당장 어떻게 해봐! 죽고 싶어?!’ 라는
의미의 눈빛으로 날 째려본다.
흥! 백날 그렇게 노려봐야, 아야세의 살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거든!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봐라!
그렇게 눈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쿠로네코의 선제공격이 가해진다.
“두 사람,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도대체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된 거지?
특히 너, 그렇게 오빠라면 질색 팔색을 하더니, 지금은 뭐야?
마치 남편이라면 껌뻑 죽는 새댁이라도 된 모습이잖아?
꿈에 나올까 무서워.”
쿠로네코의 조소 섞인 목소리, 명백히 우리의 화를 돋우고 있다.
이런 눈에 보이는 쉬운 도발에 넘어가진 않겠지, 키리노?
……라고 생각하며 보니, 이미 도끼눈을 하고 있는 키리노는
폭발할 에너지를 꾹꾹 눌러 담고 있는 표정이다.
야, 요즘 너무 쉽게 넘어간다, 너…….
“웃기지마, 이 망할 고양아! 누굴 바보 취급하는 거야!”
흥분이 극에 달한 키리노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화려한 몸짓, 손짓을 써가며 고함쳤다.
이 바보, 그랬다간…….
철컥!
나의 오른팔과 키리노의 왼팔을 이은 수갑이,
쿠로네코와 사오리의 눈앞에 수줍게 나타났다.
“너희들……. 이건 또 뭐지?”
“이 건……. 역시, 두 분은 새로운 플레이 중이었던 거군요!”
쿠로네코는 변태 남매를 바라보는 눈으로,
사오리는 ‘플레이’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본다.
“아, 아냐! 프, 플레이라니, 이딴 녀석이랑 내가……. 상상만 해도 끔찍해!”
그렇게 외치곤, 키리노는 내 어깨를 냅다 밀쳤다.
그 서슬에 옆자리 소파로 넘어진 나, 그리고 당연히
수갑으로 연결된 키리노도 그 힘에 이끌려 넘어진다.
결국 덮치듯, 내 위로 쓰러진 키리노.
언젠가 키리노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일어났던 사건에서
서로의 위치만 바뀐 형태가 되어버렸다.
“이럴 수가! 다, 다,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이토록 당당하게!”
“오호~! 그런 액션으로 진행하는 플레입니까? 흥미롭군요!”
““아니라니깐!!!””
“참, 웃기지도 않는군. 친구가 수갑을 채웠는데 풀 열쇠가 없었다니.”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인생이란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제 저녁부터 계속 이런 상태란 거야? 어처구니없군.”
“화장실이나 목욕탕 이벤트신은 어떻게 공략하셨습니까요?”
“설마, 두 사람……. 화장실에 목욕탕에 함께, 나란히, 사이좋게
들어간 거야? 이 변태 남매…….”
“다음 코믹 때,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동인지를 그려보고 싶군요.”
역시 이 녀석들은 우리의 지금 상태가 재미있어 죽겠는 모양이다.
“부탁이니까, 두 사람. 이 일, 꼭 비밀로 해 줘! 응?”
“당연하지. 내 지인 중에 수갑 플레이를 즐기는 남매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 수 있겠어?”
““그러니까! 플레이, 아니라니깐!!!””
“할 수 없군. 두 사람, 손 내밀어 봐. 내가 어떻게 해 볼게.”
그렇게 말하며, 쿠로네코는 머리핀을 꺼낸다.
그 걸로 수갑을 풀어볼 생각인 모양이다.
“하, 할 수 있겠냐? 부탁 좀 하자!”
“흥, 혹 풀리면 답례는 거하게 받을 테니, 각오하도록.”
난 얼른 오른팔을 내밀었다.
그런데 키리노는 싫다며 손을 뺀다.
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아, 아니! 이제 곧 아야세가 열쇠를 가지고 올 거잖아!
거기다 네가 안 되는 능력으로 손댔다가
혹시나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야, 야!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거냐, 넌!
“뭐, 틀린 말은 아니군. 거기다…….
지금 상황을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너에게 더 잘 어울리기도 해.”
이, 이 봐, 너까지 그러지 마라!
왜 그렇게 쉽게 포기 하냐, 너답지 않게?
키리노, 너도 그래!
물론 네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러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쿠로네코에게 맡겨 보는 것도 괜찮잖아!
하아,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오후 3시.
쿠로네코와 사오리가 돌아간 후, 연락한 시간에 맞춰 찾아온
아야세는 무사히 열쇠를 가지고 왔고…….
우리 두 사람도 무사히 나누어졌다.
“어쨌든 고맙다. 차, 준비해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벼워진 오른팔을 돌려보았다.
몸이 자유롭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는데…….
어느 새, 내 오른쪽은 막혀있었다.
키리노가 아까처럼 찰싹 달라붙어왔기 때문이다.
야, 이미 수갑, 풀렸잖아!
그런 내 마음의 소리를 시선으로 읽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키리노가 목소리를 높인다.
“벼, 별로 너한테 붙으려고 있었던 거 아냐!
그, 그냥 차 준비하는 것 도와주려고…….
그, 그리고 혹시 네가 아야세 차에 이상한 거라도 넣을까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 넌?!”
“시, 시끄러워! 남이사 뭘 하든!”
그렇게 말하며, 허리로 내 옆구리를 찌르는 키리노.
뭐야, 이제 수갑도 없는데 멀쩡한 팔은 왜 안 쓰냐, 이상한 녀석.
평소처럼 팔꿈치로 찔러 보시지!
나 역시 짜증이 나, 그 동작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지기 싫다는 듯, 키리노는 다시 옆구리로 날 찌른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아옹다옹 하고 있는데…….
“어머나……. 마치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 같네요?”
무미건조한 그 목소리에, 우리 둘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동시에 돌아보았다.
역시 광채를 잃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오는 아야세.
“아, 아니! 그, 그런 거, 아냐!”
“자, 잠깐만, 아야세! 오, 오해야! 그런 거 아니라고!”
“뭐가 오해란 거지? 이미 카나코에게 들은 바도 있는 걸?
키리노가 어제, 남자 친구랑 알콩달콩하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고…….
그거, 오빠였죠?”
그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꼬맹이가!
절대 알려선 안 될, 최악의 인물에게 그 걸 떠벌렸냐!!!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어제 밤,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지?
이렇게나 사이좋은 두 사람이 밤을 단 둘이 보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후후후…….”
악에 물든 ‘휴X폰 형사 아야세’가 방금 자신의 손으로 풀었던
수갑을 들고 천천히 다가온다.
물론 그 살기 등등한 무시무시한 눈으로 날 노려보며…….
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칠 셈이었다, 그 순간!
“거기 서랏!!!”
아, 아야세 형사님…….
그 수갑, 이 번엔 부디 제대로 좀 채워주시길…….
최근 우울한 일만 연속되고 해서......
신나게 웃을 거리가 없나, 취미 쪽 말고도 열심히 찾다가 잡은 작품.
사실 처음 봤을 때, '어린이들이 봐선 안 될 작품이군!' 이라 지레짐작하곤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시간이 있어 찬찬히 읽어봤더니, 무척 웃겼다.
원작이나 팬픽이나......
쿄우스케의 둔함은 국보급이지만~
누군가(?)의 치밀한 계략에 의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초절절 시스콘 변태 오타쿠'화 되어가는 모습이 참......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나저나 그 누구씬 이 작품에서 왜 굳이 샤워를 했을까?
도대체 뭘 기대했다가 화를 냈을까?
늬들 그냥 개그콤비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