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 한 편.
나와 오빠는 벽에 기댄 채, 침대에 나란히 앉자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잠들기엔 아직 이른 시간.
이따금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척이나 조용하고 느긋한 저녁 한 때.
우리도 그 느낌 그 대로, 조용히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조용히 있던 오빠가,
불쑥 고개를 돌려 날 보더니 입을 연다.
“저기, 키리노. 있잖아…….”
“무슨 소리 하려는지 말 안 해도 알아, 하지만…….
이미 다 늦었잖아, 이제 와서 그런 말 해 뭐해?
거기다……, 내가 괜찮고 했잖아. 그걸로 된 거야.”
“아니, 그래도……. 혹시, 지금이라도…….”
“됐다니깐! 왜 이래, 보기 흉하게? 그만 포기해.
그보다……, 이제 정말……, 시, 시작하자.”
정말이지…….
아까부터 이 비슷한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건지.
“……, 쯧! 그래, 알았어! ……, 저기, 그럼……. 시작한다?”
“아, 응……. 나……, 처, 처음이니까……, 제대로 리드해줘야 해?”
“아, 아니, 나도 그닥……, 자신 없는데…….”
“뭐? 너, 검은 거랑……, 하, 하지 않았어?”
“그, 그야 그렇긴 하지만……. 거의 쿠로네코가 일방적으로…….
난 그 녀석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랄까…….
사실,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도 잘 안나.”
“뭐? 하여튼 한심하긴……. 하긴, 기대한 내가 바보지.”
“시끄러! ……, 어, 어쨌든……, 자! 그, 그럼 시작한다?”
“아…….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빠는 비장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릎 위…….
내 소중한…….
그 하늘 아래에서의 마지막 밤
노트북의 전원을 꾹, 눌렀다.
그러자 조그만 기계음과 전자음이 울리며 노트북이 켜진다.
그렇다.
지금부터 나랑 오빠는,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오빠와 그 녀석이
동아리에서 함께 만들었다는 노벨 게임을 시작하려 한다.
참고로 우린 아직 미국이다.
유학으로 온 육상 강화 훈련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그 수속을 오늘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일본으로 돌아간다.
어제 날짜로 기숙사도 비운 상황이라, 오늘 하루는 오빠가 첫 날 이 후
묵고 있는 호텔로 와서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이미 저녁식사도 마치고 목욕도 했고…….
따뜻한 잠자리에 들어, 내일 돌아갈 비행기 시간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
하지만 아직 졸리지도 않고…….
그래서 말로만 들었던 그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프런트에 말해서 방 하나, 더 잡는 게 어때?
아니면 하다못해 2인실로 옮겨달라고 하던가.”
“같은 말, 몇 번 반복시킬 거야, 정말! 내일이면 돌아가는데 왜 쓸 때 없는 돈을 써?
거기다 나, 다 늦게 들어왔잖아. 이제 와서 뭐라고 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고.
설사 바꿔준다고 해도 후진 방을 줄게 분명하니, 차라리 이 방이 훨씬 나아!”
그렇게 말하고는 짐짓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뭐야? 나한테 이상한 짓, 할지도 모르겠다, 이거야? 이 변태~!
설마 그제 기숙사에서, 나 자는 동안 이상한 짓 한 거 아냐?”
“안 했거든!”
“흥~, 그 말을 믿으라고?”
“믿어! 그보다, 달라붙지 좀 마!”
“각도 상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안 하면 난 화면이 안 보인단 말이야!”
응?
마지막에 뭐지, 이 느낌은?
우리, 이 비슷한 대화를 언젠가 한 것 같은데?
투닥 대는 동안, 인스톨이 끝났다.
바탕화면에 작게 아이콘이 생겨난다.
참고로 호텔 방 안에는 나란히 앉아서 게임을 할 만한 공간이 없다.
탁자는 의자가 너무 커서 한 화면을 함께 보며 하기엔 너무 불편하고,
그렇다고 바닥에 주저앉아 하기는 그렇고…….
그래서 할 수 없이 1인용이지만 꽤 넓은 침대 위에 앉아,
일단 내 무릎 위에 노트북을 놓고 하고 있다.
“대충 여유롭게 해도 5시간이면 모든 루트를 클리어 할 수 있어.”
오빠가 게임에 대해 설명한다.
“일단 루트는 총 3가지고……, 이야기 시작은 주인공이 악몽을 꾸는 걸로 시작해.”
대충 들어보니, 전체적인 게 보인다.
딱 그 녀석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다.
나도 뭐, 딱히 싫어하진 않지만…….
“흠~, 제법 재미있을 것 같은데?”
“글쎄……, 해본 뒤에도 똑같은 말 할 수 있을지…….”
“그도 그러네. 어떤 끝내주는 중2병 설정이 튀어 나오려나?”
아이콘을 더블클릭해, 게임을 시작한다.
서글픈 느낌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오프닝.
그리고 비장감 넘치는 이미지.
딱……, 그 새까만 녀석의 냄새가 팍팍 난다고나 할까.
아까 오빠가 이야기한대로, 한 소년이 계속 되는 악몽 속에서
망자의 나라를 헤매며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참…….
전에 그 녀석이 보여줬던 동인지랑 느낌이 비슷하다.
어쩜 그렇게 한 결 같이 칙칙할 수 있는지.
이거, 무슨 콘테스트에 출품했다고 하지 않았나?
좀 밝고 가벼운 면도 있어야 유저들도 좋아할 텐데 이래선…….
그런 감상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신속하게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간다.
이 정도 게임이야, 이 몸에겐 아무 것도 아니지!
“……, 있잖아.”
“응?”
“그 녀석……, 나랑 같이 게임은 만들어보고 싶어 한다는 거, 정말이야?”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응! 뭐, 직접적으로 표현한 건 아니지만…….
왜, 전에 같이 놀 때도, 다 같이 뭐 해보자는 말, 있었잖아?
분명 그럴 거라 생각해.”
“그래?”
문득 그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기뻤다.
중증의 중2병 환자에 걸핏하면 말꼬리 잡고 날 놀리고 그러다 다투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패션, 성격 등 뭐 하나, 나랑 맞는 게 없는…….
새하얀 피부에 부럽도록 아름다운 길고 새까만 생머리.
고스롤리 코스프레 의상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아담한 몸집에 귀여운 얼굴.
아야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난 그 녀석을 아야세만큼 좋아……, 아니, 아니, 싫어하진 않는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 녀석에겐 말하지 않을 거지만…….
그런데…….
“그런데 있지…….”
“응?”
“나……, 지난 몇 달 간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데……, 그게…….”
난 지난 몇 달 간 목소리도, 어떻게 지난다는 소식조차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떠날 때조차도 비밀로 하고 사라져버렸다.
연락할 수 없었던 게 아닌, 철저히 내 쪽에서 무시한 형태.
물론 내 입장에선 스스로 가한 ‘구속’이었지만…….
상대 입장에선 너무나 일방적이고 이기적은 행동뿐이었다.
“이제 다들……, 나 같은 건……, 정 떨어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한 목소리로 내 말을 가로막는다.
“그 녀석들이 그럴 리가 없잖아! 물론 걱정되는 마음에 화는 나겠지.
하지만 그 정도로 널 싫어할 녀석들이 아니잖아, 그 녀석들!
쿠로네코도 사오리도 그리고 아야세도…….
절대 진심으로 널 원망하거나 싫어하지 않아!
반대로, 그 녀석들 중 누가 몇 달 동안 너랑 연락 끊고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고 해봐, 그럼 넌 ‘너 같은 녀석, 신경 끄고 살 거야!’ 하며
잘라낼 거야? 아니잖아! 너도 그 녀석들도…….
그런 녀석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알잖아?”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 설교하더니, 멀뚱히 자길 바라보는 내 눈빛에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다.
“……, 그래, 그렇겠지? 응! 맞아!”
맞다.
오빠 설교를 들을 것도 없이,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내 친구들은 그런 애들이 아니다.
그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가끔씩 꽤 괜찮은 소릴 한다니까, 너.”
“아, 예~, 가~끔 말이죠.”
불만어린 목소리지만 속으론 기뻐하는 것 같은데?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걸 억지로 참는다.
다 알 거든?
……, 날 설득하려고 정신없이 말을 꺼내다 보니,
갑자기 너무 창피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잖아?
하여튼, 왜 늘 생각이 뒤따르는 모양새인지.
그래도 뭐…….
일단은 고마…….
“…… 워”
“응? 뭐라 그랬냐?”
“아, 아, 아무 것도 아냐!”
이런!
무심코 마음의 말이 입으로 나오고 말았다.
흥!
누가 말해줄 것 같아?
그 보다, 고개 돌려!
나 보고 말 하지 마, 침 튀잖아!
아우, 정말…….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며 게임을 진행시킨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말이야?”
오빠가 입을 열었다.
“미국 본토 햄버거는 되게 클 줄 알았는데, 별로 안 그렇더라?”
“응? 글쎄, 난 계속 기숙사에만 있었고, 애당초 칼로리 때문에
패스트푸드는 거의 안 먹지만……. 흠~.
어차피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햄버거도 미국 거고,
어디든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듣고 보니 그도 그러네? 난 여기 오기 전엔 미국 건 일본 거보다
배는 클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런데 별 차이가 없어서 놀랐어.”
“풋! 그게 뭐야~”
그렇게…….
우리는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게임을 이어갔다.
- 달칵! 달칵!
“응? 또 모르는 단어가 나왔는데~, 이건 무슨 뜻이야?”
“아~, 그건 주인공이……. 응~, 그러니까…….
망자의 나라에만 있음에도 망자들도 모르는…….
그런 설정의 성스러운 속성의 아이템 이름일 거야, 아마.”
“하여튼! 이 괴랄한 센스 좀 어떻게 안 되나? 하다가 머리 깨지겠다!”
“배경이랑 아이템 설정 같은 건 올 클리어 하면
더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해 봐.
작품을 대충 보고 비평하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리노 선생님?”
“우와~! 중2병 설정에 포위되어 버틸 수가 없닷!”
- 달칵! 달칵!
“그러고 보니, 이 거. 무슨 콘테스트에 출품했다며? 상, 못 받았어?”
“훗, 훗, 훗~! 잘 듣거라! 엄청난 다운로드와 함께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노라!”
“무, 말도 안 돼! 그렇게 대박 난 거야?”
“대박 났지, 대박 막장게임으로…….”
“푸핫! 그럴 줄 알았어, 아하하하!”
- 달칵! 달칵!
“그런데 있잖아!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몇 작품이 여기서도 하긴 하더라?
그런데 더빙이 엉망인 거 있지? 아니, 연기야 그렇다 치고.
귀여운 소녀들의 목소리가 왜 다 아줌마냐고!
거기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건 폭력신이나 야한 장면,
끔찍한 장면 같은 걸 어린애들이 보든 말든 버젓이 보여주면서!
왜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신나게 잘라 대는 건데?!
애니가 그렇게 만만하냐고! 그럴 거면 차라리 수입하지 말란 말이야!
앙? 내 말이 틀렸냐고!”
“……, 큭!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 일단 이 거 놓고 말씀하시죠.”
“어? 왜 얼굴이 새파래?”
- 달칵! 달칵!
“여기 와서, 관광 좀 했냐? ‘자유의 여신상’ 같은 거나.”
“설마 너, ‘자유의 여신상’ 이 뉴욕에 있는 거, 모르고 한 소리는 아니겠지?
그동안 내가 대륙 횡단할 시간이 있었겠어? 바보 아냐?”
“……. 아니, 난 그냥…….”
- 달칵! 달칵!
“돌아가면……. 그 동안 나온 신작게임 사러 갈 거니까, 같이 가.”
“응? 아니 너, 여기 오기 직전에 내가 사준 게임도 다 클리어 못 했잖아?
그거나 다 깨고…….”
“물론 가자마자 ‘오빠 팬티’ 랑 ‘커스동’ 은 마저 클리어 할 거야!
하지만 사는 거랑 클리어 하는 거랑은 다른 문제란 말이야!
거기다 한정판이나 특전이 남은 게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고!
그러니까, 알았지?”
“하아~, 네, 자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살게 얼마나 있는데?”
“응~. 지난 달, 신작 출시가 많았으니까, 그 것부터 다 사야겠지?
5개 정도 될 거야.”
“……, 아주 빠삭하시네요, 키리노씨.”
“아! 그리고 어제 블로그에서 봤는데, 얼음 컵 모형에 여동생 팬티를
차갑게 해서 넣어 팔더라? 난 창피하니까, 그 건 네가 사다 줘.”
“넌 날 아주, 변태로 만들려고 작정했냐!”
“앙? 원래 변태였잖아, 너. 왜 자기 부정을 하고 그래?”
- 달칵! 달칵!
“아, 이 장면! 그래픽이랑 효과, 괜찮지?”
“나쁘지 않네. 그런데 이 거, 거의 그 녀석이 다 만든 거지?”
“그렇지 뭐. 나야 그런 쪽에 지식이 없으니 별 도움도 못 됐어.
마지막 감수나 프로그램 문제 같은 건, 전에 말했던 쿠로네코 친구가 주도했고.
그래도 역시 CG와 시나리오, 스크립트 짜는 것 같은 가장 중요한 작업은
쿠로네코 혼자 했다고 봐야지.”
“흠……, 그거 정말 대단하네.”
“응? 웬일이냐, 네가 그 녀석, 칭찬도 다 하고?”
“무,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응~, 그래, 그래~.”
- 퍽!
“크악! 야, 인마! 왜 갑자기 옆구리를…….”
“흥! 네가 기분 나쁘게 했잖아!”
- 달칵! 달칵! ……, 달칵!
두서없는 대화를 하는 가운데, 어느 새 게임 시나리오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주인공 소년이 적들에게 잡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그녀를 안고 망자의 나라에서 도망쳐 나오려 한다.
하지만 둘을 쫓는 어둠의 존재들에게 어느 새 따라잡히고, 결국 포위당한다.
“어? 뭐야, 이 둘, 그냥 이대로 죽는 거야? 이렇게까지 해 놓고?”
“아니, 그냥 계속 해 봐. 아직 끝난 것, 아니잖아?”
그 말에 난 다시 게임을 진행시킨다.
끝까지 몰린 주인공, 결국 절망하며 그녀를 꼭 껴안는다.
두 사람 앞엔 죽음 밖엔 남지 않은 상황, 그런데!
잠들어있던 그녀가 눈을 뜬다.
그리고 피에 젖은 주인공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다, 그 순간…….
- 푸샥!
경악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다시 바라보려 하지만,
빛을 잃어가는 그 눈동자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아침.
나날이 야위어가는 주인공이 걱정이라는 주인공의 소꿉친구.
그 날도 아침 일찍, 주인공을 깨우러 그의 방에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주인공.
불길한 마음에 이불을 걷자, 그 안엔…….
참혹한 모습의 시체, 그리고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백골.
그렇게 화면은 어두워져 가고…….
그리고 새빨간 글씨로 떠오르는 'END' 마크.
“이……, 이게 뭐야? 거기선 그냥 베드엔딩이잖아!”
“뭐, 그렇지~.”
“하아~, 뭐랄까 눈물 나게 썰렁한 엔딩이네.
나야 사전에 대충 내용을 들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그냥 했으면 꽤 눈물 나겠는 걸?”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나저나, 남 말 하지 말고.
너도 울잖아, 자!”
“시, 시끄러!”
오빠가 내민 손수건으로 대충 눈가를 수습한다.
그런 날, 어쩐지 무기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오빠.
“훌쩍. 이제 두 개 루트가 남은 건가? 이 중에 어떤 게 해피엔딩 루트야?”
“그딴 거 없음.”
“없다고?!”
전부 베드엔딩 루트란 소리야, 지금?
참, 다른 의미에서 놀랄 노자긴 하다, 정말…….
그나저나, 이번엔 왜 그렇게 복잡한 표정을 하는 거야?
“……, 나도 좀 그렇긴 했는데……. 뭐, 이런 걸 하고 싶었데.”
“흠~. 하여튼 배배 꼬여가지곤……. 나 같으면 마지막 그 부분에서,
사랑의 힘으로 대충대충 다 넘겨버리고, 해피엔딩! 이렇게 갈 텐데.”
“그거, 네가 썼던 소설 얘기 아니냐? 거기다, 이것저것 다
대충 넘겨버리면, 그게 스토리가 되겠어?”
“상관없어! 유저나 독자는 즐거움과 행복을 대리 만족하고 싶어 한다고.
그런 게 바로……. 그래, 카타르시스야, 카타르시스!”
“흠, 그런가?”
“그렇다니깐!”
“뭐, 그게 네 감상이라면 그런 거겠지. 돌아가면 쿠로네코한테 직접 말해 줘.
그 녀석이라면 분명 네 감상이나 비평에 귀 기울일 테니까.”
“응, 그래.”
하아…….
왠지 기운이 빠진다.
우리 둘은 한 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
아, 다시 찾아온 이 느낌.
그래, 일본을 떠나기 전, 그 날 밤.
내 방에서 함께 게임을 했던 그 때가 떠오른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마음 편안해지고 따뜻했던 시간.
슬쩍, 오빠의 얼굴을 보자…….
마침 나를 보던 그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야!
왜 날 보고 있는 건데?!
오랜 시간, 그 것도 호텔 침대 위에서, 둘이 꼭 붙어서 게임을 했다는
지금 상황이 그제 서야 새삼,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오른다.
둘 곳을 찾지 못한 시선으로 방 안을 둘러보며 슬쩍 몸을 뺀다.
그러다 눈에 띈 시계, 그러고 보니 어느 새 꽤 늦은 시간이 됐다.
역시 게임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가벼운 한 숨과 함께 노트북을 닫는다.
“이제……, 그만 자자.”
“……, 어? 아, 으응! 그, 그래……. 그럼 난 바닥에서 잘게.
이 이불은 내가 쓸 게, 가져간다?”
“뭐? 신발 신고 다니는 여기 바닥에서 잔다고?
벌써부터 노숙자가 될 걸 대비하는 거야?”
“아냐! 아니, 그러니까……, 하여튼 그냥…….”
말하기 그런지 우물쭈물하는 모습.
뭐, 무슨 말 하려는지 대충 알겠지만 무시!
“돼, 됐어! 기숙사에서도 같이 잘 자 놓고 왜 그래?
바닥에서 잤다가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그게 더 귀찮아.
그러니 그냥 여기서 자라고. 고마운 줄 알아!”
“기숙사에선 침대가 하나 더 있었는데도, 한사코 못 쓰게 한 건 너였잖아!”
“앙? 제 정신이야? 어디 감히 순진무구한 여자애가 쓰는 침대에
기어들어갈 생각을 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그게 말이 되냐고!”
“왜 댁의 상식을 저에게만 그렇게 빡세게 들이 대시나요?”
오빠가 칭얼대는 동안, 난 침대 시트를 잡아당겨 긴 물결을 만들었다.
“너! 이거 넘어오지 마! 넘어오면 정말 죽을 줄 알아!”
“……. 하아, 또냐? 그나저나, 이래선 난 바로 눕기도 힘든데?”
“그런 옆으로 누워서 자면 되잖아?”
“……, 저기, 거시기……, 키리노씨? 사람이란 말이죠,
자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뒤척이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 상황이라면 말이죠.
난 반드시 침대에서 떨어지게 되어있다고!”
앙?
뭐라는 거야?
“떨어지기 싫으면, 뒤척이지 말고 자면 되잖아?”
“그래~,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긴 하지.”
“아, 정말, 무슨 남자가 말이 그렇게 많아! 얼른 자자고!
늦잠자다 비행기라도 놓치면 어쩔 거야.”
“하아……. 네, 알겠습니다, 얼른 주무십시다.”
단념한 듯, 한 숨과 함께 자리에 자리에 눕더니,
내게 등을 보이는 모양으로 몸을 돌린다.
머리카락이 베개에 비비어져 바스락 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놓은 경계선에서도 한참 벗어난 침대 끝에 얌전히 눕는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나도 반대로 등을 돌려 누웠다.
“불……, 끈다?”
“……, 어.”
손을 뻗어 침대 머리맡에 있는 조명 스위치를 끈다.
내 손짓에 달칵하고 방이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그저 방을 채우던 빛이 없어진 것뿐인데…….
그 순간, 정적이 방 안을 묵직하게 채우는 느낌이다.
그저…….
시계의 초침 흐르는 소리만이 조그맣게 들려온다.
우…….
둘이 아옹다옹 할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조용히 있다 보니…….
등 뒤로 느껴지는 온기가 묘하게 의식된다.
아…….
이, 이러다 내 심장소리, 들려버릴지도…….
아니, 아니,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자자!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꼭 감았다.
째깍대는 시계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는 느낌이지만…….
그 것마저도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있지도 않은 수면욕을 애써 끌어올려 본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넉넉잡아 20분은 지난 것 같다.
꼼짝달싹 않고 자려고 애써봤지만…….
하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등 뒤의 체온에 자꾸 마음이 간다.
더운 날 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닿으면 불쾌할까봐 신경 쓰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겨울 아침, 막 빠져나온 이불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그런 느낌에 가까울까?
“……, 저기, 자?”
“……, 아니…….”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렸다.
나도 참!
뭐하는 거야, 정말!
“저기……, 저기, 있잖아? 너……, 에로게임……, 하려고 여기 온 것……, 맞지?”
말하고 나서 몰래 한숨을 쉬었다.
나도 참, 뭘 묻고 있는 거야.
무슨 답을 기대하고…….
“……, 게임이야……, 당연히 핑계지.”
“……, 뭐?”
“당연히……, 널 만나러 왔지.”
“……, ……. 그래?”
원했던 답이다.
……, 그보다 동생 상대로 잘도 그런 부끄러운 소릴…….
“시스콘.”
“시끄러.”
그래.
내가 없으니 외로워서, 걱정 돼서…….
그래서 만나러 온 거였지.
“저기.”
“……, 왜.”
“그게……, 그러니까 어쨌든 네 결심을 방해……. 아니다, 신경 쓰지 마.”
“……, 응…….”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 다 안다.
자기가 와서 내 유학이 중단된 걸, 마음 쓰고 있는 거다.
유학과 육상에 대해서 생각하면 너무나 힘들고 괴로울 뿐이다.
친구들에겐 한 마디 말도 없이, 부모님에겐 억지 고집을 피우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데…….
결국 난 지고 좌절하고 말았고 그 결과, 빈손으로 지금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것에 대해 오빠가 책임감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돌아가자!’ 라고 말한 건 오빠였지만…….
결국 유학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한 건,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다.
사과하면 내가 이렇게 말할 걸 알고 있었지?
그래서 말하다가 중간에 끊은 거고…….
하여튼 알면서 꺼내긴 왜 꺼내?
바보…….
무엇보다…….
무엇보다, ‘돌아가자!’ 라고 말 해 줘서…….
‘네가 없어서 외로워 죽겠단 말이야!’ 라고 말해줘서…….
기뻤다.
좁아진 내 시야를 틔워줘서…….
부러지지 않으려 꼴사납게 버둥대던 날 시원스레 부러뜨려 줘서…….
일본으로 돌아갈 결심을 그 순간, 할 정도로…….
기뻤다, 진심으로.
다시 한 동안…….
우리 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잠은 여전히 올 생각이 없다.
그러다 문득…….
등 뒤로 편안한 숨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잠 든 거야, 오빠?
조심스럽게 몸을 굴려 돌아 누웠다.
내 쪽으로 동그랗게 향해진 등이, 부드럽게 상하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말 잠든 모양이다.
“저기……, 오빠?”
역시 대답이 없다.
난 손을 뻗어, 그 등을 쿡 찔러보았다.
아까까지 등으로 느꼈던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이번엔 손바닥을 펴서, 가만히 가져다 대 본다.
역시……, 따뜻하다.
어떡하지…….
역시 나, 오늘 좀 이상하다.
이래선 오늘 밤, 절대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왜 일까……, 오늘 밤은 정말 이상하다.
“음냐~.”
갑자기!
그 등이 나를 향해, 무너지듯 덮쳐온다.
“!”
순간, 눈을 꼭 감았다.
팔을 당기려 했지만, 너무나 갑작스런 나머지 늦어버렸고…….
그렇게 내 한 쪽 팔이 그 등에 깔려버렸다.
침대 쿠션 때문에 아프진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손 댄 것 때문에 깬 것 아닌가 걱정됐다.
하지만 아무래도 잠결에 뒤척인 것 같다.
소록소록, 변함없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깜짝이야…….
그나저나, 이러면 내가 만든 경계선 넘은 거잖아!
침대에서 떨어진다며 걱정하더니, 감히 내 쪽으로 몸을 뒤척여?
죽고 싶은 거야, 정말?!
아니, 그 보다…….
등에 깔린 오른팔, 어떡해?
그냥 쑥 빼면 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러다가 오빠가 깨면?
아, 어떡하지?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바로 눈 앞, 가까운 곳에 오빠의 옆얼굴이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완전히 잠에 빠져든 얼굴이다.
뭐야, 배짱 좋네?
감히 경계선을 넘어 여동생을 덮쳐놓고는 잠이 와?
결국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이 시스콘.
난 자유로운 다른 쪽 팔을 뻗어 그 코끝을 콕 찔러 봤다.
손에 닿는 콧김이 간지럽다.
그래서 이번엔 ‘후~’ 하고 얼굴에 바람을 불어본다.
“안……, 깨네?”
다음엔 뺨을 집게손가락으로 살살 간지럽혀 보았다.
살짝 움찔하지만, 여전히 깨지 않는다.
헤헷, 이거 재미있는데?
다음엔 코를 잡아서 숨을 못 쉬게…….
“……, 응? ……, 윽! ……, 지……, 무…….”
도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그제야 알았다.
장난이라고 해도……, 지금 오빠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거다.
거기다 지금 오빠는 바로 누워있고, 그 옆의 난 오빠로 보며 누워선…….
이건 완전…….
만화나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분명 ‘퐁!’ 하는 효과음이 쓰였을 정도로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아우, 아우, 아우~!!!
지금 뭐하는 거야, 지금 뭐하는 거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난 정말 바보야, 난 정말 바보야, 난 정말 바보야!!!
이상해, 오늘 나 정말 이상해, 이 이상 갔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고, 나!
저기, 그게 그러니까……, 아!
그, 그래, 팔!
깔린 팔부터 빼자아아앗?!
‘자, 잠깐! 코우사카 키리노,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잠깐, 멈춰, 멈추라고!!!’
방금까지 장난치던 손이 부드럽게 오빠의 가슴 위에 얹어진다.
마치 여자 주인공이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를 위해
남자 주인공에 매달리는 느낌?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너 지금 왜 이래!
넌 나라고, 내 말 좀 들어라!
오늘은 그만하자, 이 이상은 절대 안 돼!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마음 한 편, 어느새 강하게 자리 잡은 ‘뭐가 안 돼?’ 하는 저항감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몸을 움직여 버린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그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대 듯, 머리를 올려본다.
그러자 숨소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그 어깨의 고동이 느껴진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나 지금 정말정말정말정~~~~~~말 위험해!!!
이게 뭐야, 어떤 마법사에게 나에게 고레벨의 ‘혼란’ 마법이라도 건 거야?!
방금까진 등에 깔린 손바닥으로 느껴지던 온기 그대로가…….
이번엔 온 몸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온기에 내 체온이 온전히 더해진 것처럼 몸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뜨겁고, 또 꼭 붙어있는데도 오빠는 아무 것도 모르고
내 얼굴 바로 옆에서 그저 편안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난 지금 이런대도……, 아무 것도 모르고 자고 있다.
왜 안 깨는 거야!
둔한 것도 정도가 있는 거 아냐?
아니, 아니…….
지금 깨도 곤란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런대도 안 일어나고…….
아니, 애당초!
이 상황에서 세상 모르고 잘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뭐야?
아니, 그러니까!
하지만 지금 오빠가 깨면 안 된다니깐, 곤란하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악!
나 지금 뭐하니?
나 지금 미친 것 같아!!!
어, 어쨌든!
깨지 마, 절대로 깨지 말라고!
내가 떨어질 때까지 깨지 마, 그 전에 깨면 정말 죽인다!
그렇게, 빨리 떨어져야겠다고 머리는 생각은 하는데…….
몸은 오빠의 어깨와 등에 둘러진 두 팔에 꼭 힘을 줘,
내 몸을 오빠 쪽으로 더 밀착시킨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 나, 나, 지금……, 아, 아, 안겨있어!
오, 오빠 품에, 그 것도 침대 위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숨도 막혀온다.
거기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느껴지는…….
“……, 흐읍! ……, 흡! 하아, 지금 나, 자신이지만 정말 재수 없다.”
아우…….
싫어, 나 오늘 정말 왜 이러지?
그저…….
돈도 아깝고 마음에 드는 방을 얻을 수 있을 확신도 없어서,
그저 한 침대에서 자는 것뿐인데.
거기다…….
오빤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편하게 평소처럼 자고 있는데.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난 지금 기뻐하고 있는 거다.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내 곁에 오빠가 있어서…….
그래, 그런 건지도……, 몰라…….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절대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나…….
아주 눈곱만큼이나마 그런 게 원인이 될 수도 있긴 있겠지만…….
이렇게 내 쪽에서 안기는 이유가 되진 않잖아?!
그 오빠라고, 평범하고 한심한 주제에 밝히기만 하는 변태!
내가 걸핏하면 ‘재수 없어!’, ‘기분 나빠!’ 라고 쏘아붙이는 그 오빠…….
- “그래. 네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던, 난 절대 바보 취급 안 할 거야.”
내 비밀을 알고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고, 인생 상담에도 응해주고…….
- “……, 친구, 만들어 볼래?”
친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고…….
- “그러니까 내가 같이 참가하는 건 무리야! 아 정말…….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알았어! ……, 그러니까…….”
두려움에 망설이던 날 오프모임에까지 이끌어 주었고…….
- “키리노! 나한테 맡겨라!”
아빠한테서 내 취미를 필사적으로 지켜주고…….
- “알겠냐?! 잘 들으라고! 난 말이다, 여동생을 아~~~주 좋아한닷!!!”
아야세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 “키리노씨? 친구 분이 방문해주셨는데 상대해드리는 게 맞다 봅니다만?”
그 녀석이랑 다퉜을 때 화해시키려했고…….
- “……, 알았어, 내가 함께 가 줄게.”
소설 쓸 때, 이것저것 도와주고…….
- “……, 아니……. 아, 요구르트 사왔는데, 먹을래?”
독감까지 겹쳐 힘들어 할 때, 날 걱정해주고…….
- “……, 고맙다, 키리노.”
내 선물과 사과에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해주고…….
- “난 네 오빠잖냐? 어쩔 수 없지.”
- “네가 돌아올 때까지 지키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 버리지 않을 거야, 설령 네 부탁이라고 해도!”
나조차도 포기하려했던 내 ‘소중한 것들’을 끝까지 지켜줬고…….
- “함께 돌아가자!”
- “네가 없어서 외롭단 말이다!”
인생 상담이 끝났는데도, 걱정스런 마음에 미국까지 날아와서
내 고집에 외롭고 힘겨워하던 날 데리러 와 준…….
나한테 겨우 그 정도 밖에 못 해준, 한심한 오빠일 뿐이야!
…….
뭐야, 이미 잘 알고 있었잖아, 나?
오빠에게 ‘겨우 그 정도’ 밖에 못 받았지만…….
난 ‘겨우 그 정도’ 에 지금 너무나 감동하고, 기뻐하고 있다.
지난 며칠 간…….
좀 짜증나긴 해도, 오빠의 존재가 이렇게 든든하고 기뻤던 적이 없었다.
가까운 사람이 힘들 때 다정히 대해주는 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유독 그런 순간에 다가오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의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잘 표현은 못 하겠지만, 그 때 중요한 건 ‘아무나’ 도 아니고,
또 ‘누구라도’ 도 아니지 않을까?
내가 좌절할 때도, 그러지 않을 때도…….
곁에 있어서 말할 수 있고, 말 해주고, 무언가를 해 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 아니라 생각한다.
또 그런 사람이 ‘누구라도’ 이렇게 기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 건…….
그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갈 사람이, 내가 원했던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절대……, 본인에겐 말해줄 수 없겠지만…….
아니, 나 지금 또 무슨 창피한 생각을, 이토록 심각하게 하고 있는 거야!
아, 정말!
내가 지금 이러는 이유는 내가 오늘 좀 이상해서 그런 것뿐이잖아!
그저 지금의 내가 평소답지 않은 나라서 어쩔 수 없다는 거야!
그래,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탈 붕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러니……,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도 되겠지?
숨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온다.
여동생의 고민하는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이…….
오빠란 인간은 그저 누가 업어 가도 모를 것처럼 자고 있다.
“훗!”
하여튼 둔해 터져가지곤…….
하긴 생각나네?
처음 인생 상담하러 왔을 때…….
내가 몇 번을 건드려 봐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지, 너.
기억해?
그러고 보니 거의 일 년 전이구나.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어.
……, 나 있지…….
일 년 전, 그 일이 있기 전엔…….
오빠에 대해서, ‘너 같은 게 무슨 내 오빠야!’ 라고 생각했어.
아니, 너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냥 무시했다는 게 정확할 거야.
다툼조차 없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
그렇잖아, 넌 나한테 무관심했고, 늘 의욕 없이 처진 모습만 보이고.
날 보려고도 하지 않았잖아?
나 사실……, 한 편으론 늘 널 봐왔어.
몰랐지?
달리기 시작한 계기도…….
네 입장에선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사소한 거였어,
네가 기억 못한다고 원망할 수 없을 정도로…….
어쨌든 그렇게 서로를 대한 우리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 역시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고 여기게 되면서 그런 관계가 길어졌지.
그런데……, 지난 일 년 사이, 그런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어.
뭐, 겉보기엔 크게 바뀐 게 없을지 몰라도.
무엇보다 너도 나처럼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어쨌든 조금이지만, 지금의 난 널 ‘나의 오빠’ 라고 여기고 있어.
네가, 오빠가 그동안 내게 해 준 것에 감사하고 있고…….
함께 있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네, 라고 생각하고 있어.
……, 그런데 있잖아…….
오빠는……, 어떤데?
지금의 날 어떻게 생각해?
일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넌 날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고 있잖아.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말도 잘 안 걸어 주잖아.
그러니……, 네 마음을 도저히 알 길이 없단 말이야, 난…….
역시 난 너한테…….
여전히 싫고 거북한 존재야?
혹시 그렇다면…….
내가 걱정되고, 내가 없어서 외롭다는 감정은 도대체…….
아, 그런가?
남매니까…….
내가 오빠의 여동생이고, 오빠는 내 오빠이니까……, 그런 거네?
일본을 떠나기 전날 밤, 나한테 그랬지?
‘난 네 오빠니까.’ 라고…….
여기서 처음 만난 날에도 그랬잖아, ‘넌 내 동생이야!’ 라고.
후훗~, 그렇지?
거기다 오빠는 못 말리는 시스터 콤플렉스니까~.
여동생이 내가 너무너무 귀엽고 소중하잖아?
안 그래요, 바보 오빠? 후훗…….
그런 생각을 하며…….
오빠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모습을 느끼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격하게 요동친다.
……, 그럼……, 만약……, 내……, 여도……, 아니……?
“으응……, 우웅? 아웅…….”
무의식적으로…….
오빠를 강하게 껴안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엔 답답했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뒤척인다.
‘아, 이번엔 분명히 깼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괴로운 듯, 잠깐 신음소리를 내더니, 몸을 뒤척여
다시 내게 등을 돌리고는 모로 눕는다.
……, 아까부터 등에 깔려있던 팔이 겨우 자유로워졌다.
나도 급히 몸을 돌려, 아까처럼 등을 돌리고 누웠다.
위험했다, 정말 위험했다.
조금만 더 있었다간, 분명히 깨워 버렸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보통 방금 정도면 깨지 않나?
정말, 얼마나 둔한 거야, 이 자식!
뭐, 그 덕에 살긴 했지만…….
그런데 나 방금……, 그 건…….
아, 몰라!
오늘 밤, 난 정말 좀 많이 이상하다.
앞머리를 거칠게 흐트러뜨리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잡념을 없앤다.
자자,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어서 자자,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질 거고,
그럼 내일 아침이면 원래의 나로 돌아올 것이다.
이불을 턱까지 당기고, 눈을 꼭 감는다.
하지만, 그러고도 잠든 건, 한 시간 정도 후 였다.
“우냐…….”
아…….
벌써 아침인가?
눈은 아직 감겨있지만, 조금씩 방 안을 밝히는 빛이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씩 잠에서 깨어난다.
음……, 어쩐지 되게 기분 좋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금 안고 있는 베개, 너무 좋다!
역시 메루쨩 안는 베개가 최고야.
안은 것 같기도 하고, 안긴 것 같기도 하고…….
따끈따끈하고 좋은 향기도 나고, 무엇보다 폭신폭신……, 폭신폭신?
……, 응?
그 건 아닌데?
메루쨩이 이런 느낌이었나?
예전보다 무거워, 거기다 뭔가 딱딱한 게 배를 찌르는데…….
“으응……, 음냐…….”
메루쨩이 이상한 소리까지 내고 있어?
아니, 잠깐만 있어봐?
난 분명 아직 미국에 있고…….
어제 밤, 분명 난 오빠가 있는 호텔로 왔고, 한 침대에 누워서…….
“……. !!!”
급격하게 잠에서 깨어, 난 고개를 들었다.
- 퍽!
“아얏!”
“우앗! 아우, 뭐야?!”
갑작스런 충격에 머리가 아프다.
그 걸 참으며 눈을 뜨자…….
바로 눈앞엔 오빠의 얼굴이 있었다.
코끝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
“…….”
“…….”
“…….”
마치 짠 것처럼 침묵.
저기, 그게 그러니까…….
난 지금 오빠 품에 안겨있고…….
오빠의 두 팔은 내 허리에 둘러져 있고…….
두 사람의 다리는, 어느 게 내 다리인지 모를 정도로 엉켜있고…….
거기에 더해 내 위쪽 잠옷 단추가 몇 개 풀려 열려선…….
매, 맨 살이 드러난 채로…….
“아, 저기……. 자, 잘 잤냐?”
순간 오빠의 얼굴은 새파랗게, 내 얼굴은 새빨갛게 변한다.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자, 자, 자, 자, 잠깐만! 제, 제, 제발 진정해, 키리노!
이건 사고야, 난 지난 밤에 한 번도 안 깼다고!”
“이, 이! 이!! 이!!! 변!!! 태!!! 당장 죽어 버려!!!!! 이 시스콘!!!!!!”
- 퍼억!
“크악!”
있는 힘, 아니 평소의 200%의 힘을 담은 박치기로 그 얼굴을 날려버렸다.
오빠는 그 대로 한 바퀴 굴러서 침대에서 떨어진다.
“우와악! 아우, 진짜 죽겠네.”
“너, 너, 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진정해, 오해하지 마, 키리노! 나, 맹세코 방금 깼다니까!
일단 진정하고 우리, 말로 하자, 응? 아, 알았지?”
서, 서, 설마…….
아까 내 배꼽 주변을 찔렀던 건…….
서, 서, 서, 서, 서, 설마!!!
확, 열이 오른다!
“변명은 지옥에서 하시지!!! 죽어, 이 변태, 시스콘, 강간범!!!”
“정말 아니라니까!!! 내 말 좀 들어 봐, 키리노!”
“뭐가 아니라는 거야! 자고 있는 동안에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 최악이야!!!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아!!!”
난 침대에 걸터앉아, 웅크리고 있는 오빠에게 연속 킥을 날렸다.
내 공격을 힘겹게 막으며, 아니라고, 자기 말 좀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 딴 거, 알게 뭐냐!!!
“아야! 야, 지, 진짜 아파! 그, 그만 좀 해! 그, 그, 그러는 넌!
너도 날 뭔가로 착각하고 껴안고 했던 거잖아!
어제 밤만 해도 말이야!”
……, 무…….
무, 무, 무슨……, 이게 무슨 소리야?!
서, 서, 설마……, 이 자식!!!
“아, 그래, 이것 봐! 역시 뭔 일, 있잖아? 어쩐지 잠자리가 불편하다 했다!
나 자는 동안 너, 몰래 핸드폰 게임 같은 거, 했지?
그러다가 늦게 자는 바람에, 피곤해서 잠결에 그런 거 아냐?”
걸렸다고 생각하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는 오빠.
…….
신이시어, 나 이제 이 녀석을 ‘삐~’ 하고 ‘XXX' 해서 ‘심의삭제’ 해도 되겠죠?
“……. 훗……, 후훗……, 우후후후훗……. 너, 너…….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방금 넌……
절대로 밟아선 안 될 초대형 지뢰를 아주 야무지게 밟은 거거든!!!”
- 짜악!!!
“어금니, 꽉 깨물어!”
방 안을 울릴 정도로 뺨을 후려쳤다.
“아얏!!!”
손맛이 참 찰지구나!
“너, 정말……!”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원망스러운 듯 쳐다본다.
웃기지마, 이제 시작이거든!
“여자애가 무슨 힘이 이렇게 세냐? 거기다, 방금 그 건 때리기 전에 하는 대사거든!”
“앙?! 그럼 ‘어금니, 꽉 깨물었냐?’ 라고 해 줄까?!”
“조폭이냐?! 너 정말, 내 동생 맞아?”
“동생한테 그 딴 짓에 그딴 소리나 하는 인간이 그럴 말할 자격, 있어? 이 초절정 바보 변태!!!”
“아니, 너 왜 이렇게 흥분을 해? 아, 아까 내가 무슨 말 실수 했어?
아까 상황이야 네가 화를 낼 만도 하다고 이해는 하지만,
방금 내가 한 말 중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야!”
……, 크윽!
“시, 시, 시, 시끄러워!!! 어쨌든 죽어! 일단 죽어!! 지금 당장 죽으라고!!!”
그렇게 한 바탕, 더 하려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우리 방 소동이 꽤나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호텔 벨보이가 찾아와서 무슨 일인지 살피고 갔다.
그리고 그 덕에 우리 둘의 싸움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내 입장에선 한 대, 시원하게 때려줘서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완전히 끝장(?)을 못 낸 게 살짝 아쉽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벨보이, 오빠를 보고는 싱글싱글 묘한 미소 짓던 게, 기분 나빴다.
체크아웃 할 시간이 다가온다.
아침의 소동 때문에 난 어느 새, 어제 밤의 일을 잊고 있었다.
지금은 평소와 다름없는 나지만…….
또 나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아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 때가 되면, 또 어떻게든 될 테니까.
“아, 벌써 시간이……. 이제 슬슬 나가자, 키리노. 다 챙겼어?”
여행용 가방을 든 오빠가 다가와 묻는다.
“시끄러, 말 걸지 마! 준비는 알아서 했으니 걱정하지 마, 이 강간범!”
“나 참, 아니라니까! 둘 다 잠결에 그런 거잖아, 신경 쓰지 마.”
“흥! 참, 오늘 아침 일, 아무한테도 말 하면 안 돼, 알았지!”
“누구한테 말 하냐, 그런 걸? 여동생이랑 호텔방 한 침대에서 자다가,
다음 날 아침에 서로 얼싸안고 깨어났다니, 농담으로라도 못할 소리라고.”
농담으로라도 못 할 소리라니, 그 것도 좀…….
아, 아니, 아니다.
내가 또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잊자, 잊자고!
안 챙긴 건 없는지, 가방 안과 방 안을 몇 번이고 살피더니…….
“난 됐고. 너 정말, 다 잘 챙겼지?”
“아, 정말! 다 챙겼다고 몇 번을 말 해? 처음 해외 나온 거, 티 좀 내지마!”
“너 정말……. 어? 야, 키리노, 저거……. 네, 핸드폰 충전기 아냐?”
“……, 아…….”
“…….”
황급히 충전기를 챙기는 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왜 재수 없게 쳐다 봐! 나, 나가기 직전에 챙겨 넣으려고 했단 말이야!”
“아, 그래? 누가 뭐랬냐?”
“큭! 너, 정말!”
결국…….
이른 아침부터 방을 나갈 때까지, 오빠랑 신나게 싸워대는 꼴이다.
하지만 뭐…….
정말 화가 나거나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역시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 응.”
방을 나와 프런트를 향해 복도를 걷는다.
한걸음 뒤에서 그 등을 보며 걷다가…….
“아우~, 아직도 뺨이 욱신거려.”
“자업자득이야! 그보다 공항까지 교통이 어떨지 모르니까…….”
난…….
“우리 서두르자, 오빠!”
오빠의 소매를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덤~
“으응…….”
아, 아침인가…….
깊은 수면의 바다에 잠겼다가 막 떠올라, 지금은 자는 것도 깬 것도 아닌 상태.
그 둥실 떠오른 듯한 나른함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이 느낌이 특히 더 좋다.
아, 이 녀석!
오늘도 역시 먼저 일어났구나, 오늘따라 더 건강한 느낌이라 다행이군.
이불도 따끈따끈하고…….
보들보들, 기분 좋은 느낌이 온기처럼 내 몸을 감싸고 있다.
모처럼 기분 좋은 아침, 조금만 더 즐겨보자.
그러다 한 숨 더 자도 좋…….
- 퍽!
“아얏!”
“우앗! 아우, 뭐야?!”
순간 턱에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
그렇게 내 모처럼의 소박한 소망은 박살나 버렸다.
아픔을 참으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정신을 수습했다.
그렇게 눈을 뜨자…….
내 눈 바로 앞엔 키리노의 얼굴이 있었다.
그 말 그대로, 코가 닿을 정도로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
“…….”
“…….”
“…….”
마치 짠 것처럼 침묵.
저기, 그게 그러니까…….
키리노가 내 품에 안겨 있고…….
난 키리노의 허리에 양 팔을 감고 있고…….
가당치도 않게 키리노의 잠옷 속에 들어간 내 손은
손바닥으로 키리노의 등, 그 맨살을 더듬고 있는 모양새고…….
두 사람의 다리는 어느 게 누구 다리인지 모를 정도로 엉켜있고…….
먼저 일어난 그 녀석은 키리노의 아랫배를 꾹 누르고 있고…….
“아, 저기……. 자, 잘 잤냐?”
눈앞에 펼쳐진 무시무시한 현실에…….
일단 난 평소에 하는 일상적인 말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그런 내 신사적(?)인 태도 따윈 안중에도 없어진 동생님은
순식간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여간다.
그리고 내 품 안에 작은 몸이,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모으기 위해 바들바들 떤다.
한편 나는…….
절대 틀릴 리 없는 슬플,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아플 예감에 몸서리친다.
아마 내 안색은 지금 새파랗게 질려있을 것 같다.
진짜로 무섭다, 나 오늘 이 자리에서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불효자식 먼저 갑니다.
그 것도 동생 손에요.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
“자, 자, 자, 자, 잠깐만! 제, 제, 제발 진정해, 키리노!
이건 사고야, 난 지난 밤에 한 번도 안 깼다고!”
“이, 이! 이!! 이!!! 변!!! 태!!! 당장 죽어 버려!!!!! 이 시스콘!!!!!!”
- 퍼억!
“크악!”
이 녀석에게 꽤 많이 맞아봐서 어지간한 공격엔 내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박치기는 내 내성을 간단히 초월했다.
반동과 고통에 한 바퀴 구른 난,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져 버렸다.
“우와악! 아우, 진짜 죽겠네.”
“너, 너, 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겨우 고개만 돌려 보자, 저승사자 형상을 한 키리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마치 사X코처럼 내가 쓰러진 쪽으로 천천히 기어온다.
그리고 날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며 빠드득, 이를 간다.
무, 무서워!
순간, 방금 박치기의 고통 따윈 완전히 잊을 정도로 너무너무 무섭다.
“진정해, 오해하지 마, 키리노! 나, 맹세코 방금 깼다니까!
일단 진정하고 우리, 말로 하자, 응? 아, 알았지?”
일단 어떻게든 저 분노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쓰러진 모양 그대로, 납작 엎드려 변명을 더해 설득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변명은 지옥에서 하시지!!! 죽어, 이 변태, 시스콘, 강간범!!!”
“정말 아니라니까!!! 내 말 좀 들어 봐, 키리노!”
“뭐가 아니라는 거야! 자고 있는 동안에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 최악이야!!!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아!!!”
역시, 예상 가능한 패턴이었어요, 하긴 한두 번 당하나…….
험악한 말을 퍼부우며, 침대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파운딩 킥(?)을 날리는 키리노.
이미 내가 뭔 이야기를 하던, 설령 내 결백을 증명할 증거가 나온다고 해도
형벌은 반드시 정해진, 마녀 재판 같은 전개.
날 살린 건(?), 소음 때문인지 우리 방을 살피러 온 벨보이의 노크였다.
제 3자가 개입하자, -원인이야 어쨌든- 소란을 피운 당사자인 키리노의
분노는 금세 누그러졌다.
뭐, 다행이긴 한데…….
방을 나가기 직전, 내 얼굴을 보더니 뭐라고 하며
어깨를 툭툭 치곤 씩 웃는 그 벨보이의 미소가, 영 마음에 걸린다.
서, 설마 이상한 오해를 한 건 아니겠지?
참,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부터 거하게 한바탕 한, 나와 키리노.
그래도 뭐…….
내 마음대로, 동생의 입장과 마음은 무시하고…….
그저 내 고집대로, 키리노에게 울며 매달린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키리노에게 험한 꼴도 당했지만…….
역시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 응.”
짐을 챙기고, 우리 둘은 방을 나와 프런트를 향했다.
“아우~, 아직도 뺨이 욱신거려.”
아까 벨보이가 오기 전, 한 대 제대로 맞은 뺨이 아직 아프다.
그런 뺨을 문지르며, 불만어린 목소리로 한 마디 해 봤다.
“자업자득이야! 그보다 공항까지 교통이 어떨지 모르니까.
우리 서두르자, 오빠!”
그렇게 말하며, 내 옷 소매를 잡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는 키리노.
아까 일을 떠올리며 또 짜증내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곁으로 한 걸음 다가와, 날 올려다보는 키리노의 미소는……
뺨의 아픔까지 싹 잊게 할 만큼 너무나 귀여웠다.
하아~, 눈이 빠질 것 같아효!
어떻게 '퇴고'에만 이틀이 걸리냐~
쿄우스케가 미국으로 키리노를 데리러 간 에피소드에 대한 팬픽도 꽤 많다.
아무래도 사건의 스케일 자체가 큰 부분이고,
몇 달의 공백 후 재회라는 것도 있고,
낯설고 먼 땅에 며칠동안 남매 둘이 지냈다는 것도 이러저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리.
어쨌든 그 속에서~
오빠가 와줘서 감동스럽고 고마우면서,
거기에 더해 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함께' 라는 의미가 좋은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난......
너무 길었지만, 재미있게 봤던 팬픽이었다~
피곤하고, 작품 내에 이미지가 있으니, 짤방은 생략~
(그나저나, 해 놓고 여긴 안 올린 작품이 하나 있군~)